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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 구조 탐색
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 구조 탐색
  • 전진성 부산교대
  • 승인 2006.12.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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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억연구의 르네상스(3) 서구 기역연구 동향

전진성 / 부산교대 · 서양사
기억 연구는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다.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영역에 국한시켜볼 때, 기억 연구의 호황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기억의 터” 연구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가 기획하여 1984년부터 1992년에 걸쳐 총 7권으로 출간된 대작 ‘기억의 터’는 좁은 의미의 ‘기억의 장소’를 넘어 기억을 담고 있는 상징적 행위와 기호, 그리고 기억을 구축하고 보존하는 기능적 기제들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민족의 기억을 집대성했다.

노라의 ‘기억의 터’는 사회심리학자 모리스 알박스의 선구적 업적으로부터 영향 받았다. 알박스는 1925년 ‘기억의 사회적 구성틀’을 출간한 이래 특유의 “집단 기억” 이론을 펼치며 기억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구조 그리고 기능방식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지녔던 알박스는 기존의 ‘역사’ 이데올로기가 은폐해 온,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폭로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집단기억에 ‘수렴’되지 않는 개별 기억들을 간과하는 한계를 보였지만, 집단기억이 특정한 ‘공간’을 매개로 구축된다는 그의 학설은 후대의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알박스와 노라의 선행 연구를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 것은 독일의 문화과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가 정립한 “문화적 기억” 이론이었다. 그것은 개별 기억들이 통합되고 갈등하면서 집단기억을 형성, 전수,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기위해 문학 작품을 비롯한 각종 텍스트, 신화와 종교적 제의, 기념물 및 기념 장소, 문서보관소 등 다양한 재현의 ‘매체’를 통해 기억이 제도적으로 공고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승되는 형식을 규명하고자 했다.

국역된 알라이다 아스만의 저서 ‘기억의 공간’(경북대학교출판부, 2003)은 기억 연구의 문화과학적 확장을 위해서는 필독서다. 여기에 사이먼 샤마(Simon Schama)의 미술사 연구서 ‘풍경과 기억’(New York, 1995)과 제임스 영(James E. Young)의 홀로코스트 기념물 연구서 ‘기억의 직물’(New Haven, 1993) 까지 곁들이면 기억과 예술적 재현의 문제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얻을 수 있다.

기억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 기억의 윤리적 차원에 대한 연구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 특히 ‘트라우마’ 증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재현의 체계 내에 쉽게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 대한 진지한 공감과 책임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트라우마적 기억에 관한 논의는 주로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관련해 이루어졌는데, 이중 미국 역사 이론가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의 저서 ‘역사 쓰기, 트라우마 쓰기’(New  (Baltimore and London, 2001)는 그 문제 의식의 깊이로 인해 돋보인다. 기억 연구의 ‘윤리적 전환’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식민주의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데 있다. 국역된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저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갈무리, 2005)은 이러한 문제 의식의 보고이다. 

전진성 / 부산교대 ·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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