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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정치학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기억의 정치학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 신주백 서울대
  • 승인 2006.12.03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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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억연구의 르네상스(2) 한국 기억연구의 흐름과 과제

신주백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인간의 기억은 개별적 사실이 퇴적되어 보존된 결과가 아니다. 기억의 주체가 처한 상황과 현재적 관심 등에 따라 그 편차는 천양지차다. 기억은 다층적 차원의 현재, 심지어 기억주체가 과거를 회상하는 그 순간의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성·변화한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은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국가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국가의 출현을 계기로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거대한 이미지 체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흔히 이를 공식기억이라고 말하며, 교과서는 공식기억을 담아내는 가장 상징적인 기억물이다.

한국에서 공식기억 내지는 교과서적 기억에 대항하는 기억의 본격적인 구성작업은 1987년 6?0 민주화 운동 전후부터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좌파와 사회주의운동처럼 지난 시기 소외되었던 역사를 규명하고, 4?과 5?8처럼 강요된 침묵으로 인해 탄식만을 내뱉어 왔던 역사에 대한 사실을 복원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냉전의 그늘에 가려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북한을 실사구시 차원에서 바로 알려는 학문적 접근도 본격화되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고, 이듬해 사회주의권의 맹주 소련이 몰락함으로써 냉전은 해체되었다.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미쳤다. 1990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으로 본격화한 일본군 ‘성노예’문제 등 전후 보상 재판이 바로 그것이다.

안팎에서 기억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원인과 전개과정 등 사실을 드러내는 작업부터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작업까지 공식기억을 생산하는 작업방식과 동일하였다. 문헌자료에 근거한 진실규명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접근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의 표현대로 오랜 세월 동안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전쟁과 사회’).

이때 대항기억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구술이었다. 드러난 한국역사의 새로운 이면을 파헤치려는 구술 작업이 집단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자에 대한 구술 채록 작업부터였다. 뒤를 이어 4?과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구술 작업이 이루어졌다.

최근 들어서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2004년부터 구술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과거청산 관련 각종 위원회에서도 구술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구술 작업은 면담자와 증언자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구술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 인생 선배로부터의 삶을 배우려는 자세를 포기한 채 ‘약탈적 수집방법’을 반복해 왔다. 때문에 구술자가 면담자의 질문에 따라 단순히 과거경험을 말하는 것을 넘어 이를 해석하면서 재생산해내는 과정에서 기억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민중의 기억을 재현하여 민중사를 쓰겠다는 연구에서조차 이 한계는 극복되지 않았다. 기억의 민주화를 가로막는데 구술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구술사 연구는 소개된 서구의 이론을 섭취하면서 10여년 이상 발로 뛴 경험의 결과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농경사회이자 역동적인 한국사회의 특징에 맞는 한국적 구술사 방법론을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이산가족’, ‘구술사 : 방법과 사례’).

21세기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의 대항기억이 공식기억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에서부터 진보대 보수의 구도로까지 이어지는 태생적인 제한성 때문에 현재적 정치투쟁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종 위원회가 주도하는 과거청산작업이 지속되고 있어 기억투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런 자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기억연구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데서 여전히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의 기억연구는 사실 규명 못지않게 과거가 기억되고 그 기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되며 개개인의 일상으로까지 이월되는 전승체계 또는 재현체계를 연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어 희망적이다(‘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

전진성의 표현대로 한국의 기억연구는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 기억의 문화사로’ 나아가고 있다. 이항대립적인 기억연구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의 문화사 연구를 더욱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사 연구에서까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기억의 주체로 내세우려는 증언자 중심주의도 더욱 뿌리를 내려 한다(정혜경, 이용기, 양현아). 기념물과 문화매체, ‘임시적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연구처럼 다양한 연구영역을 개발해야 한다. (권혁태, 김민정,김민환,정근식, 정호기, ‘전쟁과 기억’).

더 나아가 근현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간성, 남한을 벗어난 공간성을 확보하는 비교연구쪽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김기봉, 김승렬, 송충기, 이진모,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분단의 두 얼굴’,‘8·15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

신주백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 연구(1925-40)’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교과서에서 재현된 8.15, 망각된 8.15’, ‘8.15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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