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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남북정상회담, 그 이후
기획특집: 남북정상회담, 그 이후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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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북한 다녀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한반도에 탈냉전의 거대한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신문에서는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방북을 하고 돌아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인터뷰와 남북한 통일체제를 비교하고 있는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의 분석, 그리고 지난달 26일 ‘남북정상회담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열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심포지엄을 소개한다.

인터뷰 : 북한 다녀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세계시민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통일’ 필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고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박물관장, 중앙도서관 관장 등을 역임하고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장등을 지낸 뒤 현재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으로 지내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상업자본의 발달’,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20세기 우리 역사’, ‘21세기사의 서론를 어떻게 쓸 것인가’ 등이 있고, 심산학술상(1997년)과 한겨레통일문화상(2000년)을 수상한 바 있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사학)는 ‘분단 극복을 위한 실천적 역사학자’라고 평가된다. 그런 그가 지난 남북정상회담에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상임의장 자격으로 방북수행원에 참가, 방북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평생동안 분단극복을 외쳐온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예언이 당대에 실현되는 감격”을 맛보고 돌아왔다고 전한다. 동행했던 동갑내기 고은 시인과 함께 손을 붙잡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감격해 했다고 한다. 통일지향의 역사연구과정에서 그는 세 번이나 투옥을 당했고, 교수직에서 해직되는 고통도 겪었다. 그는 우리의 근대국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통일이 됐을 때 비로소 근대통일민족국가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분단시대의 극복을 위한 역사연구에 몰두해오신 역사학자로서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분단된 민족사회가 통일된 것은 독일의 흡수통일과 베트남의 전쟁통일 두가지 방법에 의해서 입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는 흡수통일도 전쟁통일도 아닌 ‘협상통일’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협상통일로 가는 출발점이 됐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가까이서 본 김정일 위원장이나 평양의 인상은 어떠했습니까?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 모두가 지켜본 대로, 텔레비전에 비쳐진 모습 그대로가 그의 본래 면목이지 않은가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만나보지도 않고 매스컴의 잘못된 보도만 그대로 믿고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가까이서 본 바로는 김정일 위원장은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어 보입니다. 평양은 생각보다 안정이 돼 있었습니다. 6·25때 완전히 파괴된 도시인데, 지금은 완전히 새로 건설돼 말 그대로 현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녹지공간도 많고, 자동차도 없고 조용하고 안정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래 평양이라는 이름 자체가 평평한 땅(平壤)이라는 뜻인데, 서울은 산이 많은데 비해 평양은 굉장히 넓더군요. 새삼 놀랐지요.”

△이번 공동선언문중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첫 번째 항목의 ‘자주적’라는 대목과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두 번째 항목의 통일방안에 대한 것입니다. 일부에서 ‘자주’라는 표현에 대해서 ‘북한의 전략적 수사’에 말려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보이고 있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결국 ‘북한 중심의 통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공동선언문의 요점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주적’이다라는 것이죠. 여기에는 남북이 공조체제를 이루면서 통일을 해나가야 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사실, 통일이란 다른 국가나 민족이 해줄 수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주적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죠. 일부 보수층의 비판은 공연한 트집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는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가 합치점을 찾았다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수확입니다. 달리말하면, 남북당국자가 통일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해 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양쪽이 다 통일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라는 표현이 갖는 의미입니다. 이는 대단히 의미가 있는 선언입니다.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생각하는 ‘경제공동체’를 상정하는 것이고 남북 모두의 고른 경제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거죠. 명칭도 이전에는 공동성명, 남북합의였지만, 이번에는 더 강한 개념이 내포된 ‘선언’이라는 점도 큰 성과지요.”

△연합제와 연방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연방제는 외교권과 군사권을 가지는 국가를 하나 두고, 남과 북에 내치권을 갖는 두 개의 지방정부를 두자는 1국가 2정부 2체제안 입니다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죠. 연합제는 외교·군사·내치권을 갖는 두 개의 정부를 유지한 채 화해하고 신뢰를 구축해 가자는 2국가 2정부 2체제 안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의 안이 가진 공통성을 인정하는 자리였습니다, 외교권과 군사권을 가지는 중앙정부를 현재의 남북 두 정부위에 따로 두는 일을 유보하고, 현재의 두 정부가 외교·군사·내치권을 모두 가지면서 정상회담, 각료회담, 의회회담등을 통해 통일을 해나가자고 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연방제와는 다르고 오히려 남한의 연합제에 가까운 것입니다. 북한에 주도권을 넘겼다는 비판은 잘못된 거죠.”

△근본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도대체 통일은 왜 필요합니까?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하면,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거나 분단세, 군사비, 의무적인 군대복무등의 이유를 대곤 했습니다. 한반도는 온세계 사람들이 전쟁위협이 제일 큰 곳으로 지목할 만큼 늘 동아시아의 화약고였습니다. 우리는 20세기보다 21세기를 더 유복하고 평화롭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민족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늘 주변국들에게 위협이 되고, 이래서야 국제무대에 나가서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답고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통일이 돼야 합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같은 단군자손이라는 이유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해선 안됩니다. 너희들이 앞으로 세계시민으로서 떳떳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낫기 위해서 통일을 해야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통일의 의미와 필요성을 제대로 가르치는 올바른 통일교육이 시급합니다.”

△통일방안은 어떻게 마련될수 있을까요? 또 통일의 주체는 누구로 설정해야 할까요?
“통일의 주체는 당연히 한반도에 살고 있는 칠천만 인구지요. 그러자면 남북의 칠천만 주민이 모두 통일을 염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야 하고, 남북정상들은 그 길을 열어가는 것이지요. 칠천만 전체가 통일해서 살아가야 한다라는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통일은 방법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 사회주의도 무너졌고, 자본주의가 독야청청하는 것 같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월러슈타인도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50년을 못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21세기에 접어들면 새로운 체제, 새로운 세계체제가 얼마든지 나올수 있고, 협상을 통한 우리의 통일과정이 일이년 걸리는 것도 아니라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하는 ‘통일체제’ 구상은 무의미합니다. 20세기적 사고를 가지고 21세기의 문제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전쟁, 냉전을 경험한 20세기 인간이 20세기적 민족관과 통일관을 가지고 21세기 인간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통일의 방법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긴 협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자면 먼저 냉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법규를 없애야지요. 우리가 무력통일을 할 것도, 흡수통일을 할 것도 아니고 평화적으로 협상을 해서 통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방북기간에 북한의 도서관을 돌아보셨다고 하는데.
“인민대학습당에 가봤는데 조금 놀랐어요. 소장 도서가 3천만권이라고 그러는데, 그곳은 도서관 기능만을 하는게 아니라 교육기능, 연구 기능도 있고, 강의도 해요. 다른 사회주의나라에서는 없었답니다. 지방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를 공부하고 싶다고 알려오면, 연락편지를 보내고, 관련도서를 보내준답니다. 더 알고 싶으면 불러 올려서 숙소와 연구를 할수 있는 방을 마련해주고 공부를 할수 있도록 해준대요. 대학생만이 아니라 노동자나 농민 누구나 할수 있다는 거예요. 아주 특이한 걸 보고 왔어요.”

△남한 학계에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학술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류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상대방의 업적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진행된 양쪽 모두의 역사와 학문적 수준, 방법론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역사학만 해도 그쪽은 유물사관에 입각해있고, 이쪽은 비유물사관이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통일이 되기 이전에도 쌍방이 만나서 후세들을 위한 통일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느 쪽이 봐도 타당성이 있는 아주 객관적인 책을 만들어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일은 통독이 되고 난 다음에도 서독의 교과서를 그냥 쓰고 있어요. 서독이 동독을 흡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써도 될 만큼 서독의 교과서가 객관적이었다라는 얘기거든요. 역사교과서가 더 이상 한쪽 중심으로만 돼있을 수는 없습니다. 양쪽에서 자주 접촉을 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독립운동사, 하나의 민족해방운동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민화협 상임의장인 강만길 교수는 이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북한의 김영대 민화협의장과 만나 올해 7·4남북공동성명 기념행사, 8·15기념행사, 시드니 올림픽 응원등 3가지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역사학자로서 그는 남북통일의 역사적 논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동안 좌우합작, 민족통일전선 연구를 지속해왔다. 조만간 그는 또하나의 연구서 ‘통일지향 우리민족해방운동사’라는 저서를 펴낼 예정이다. 그는 강연요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남북화해시대를 맞은 지금 그가 보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통일교육’이기 때문이다.

<김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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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통일방안 비교 -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연방제, 남한‘연합제’부분 수용…상호‘공존’상태 유지에 무게

정해구 / 성공회대·사회과학부

남북 정상은 지난 6월 15일 남북 공동선언문을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합의를 이루어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는 첫 번째 합의 사항과,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두 번째 합의 사항이 그것이다.
이 같은 합의에 대해 국민 대부분은 크게 환영했다. 그것은 반 세기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측이 통일의지를 보여주었던 한편 통일방안에 대해서까지도 일정한 합의를 이루어내는 예상외의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문제에 대한 이 같은 합의에 대해 야당은 반론을 제기했다. 합의문에 명시된 `연합제 안이 범국민적 합의가 없이 이루어진 대통령 개인의 견해가 아닌가 하는 한나라당의 지난달 16일자 반론이나, “통일문제가 공동선언의 핵심합의가 된 것은 북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보이며”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듯한 표현에 대해 많은 국민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통해 천명된 이회창총재의 반론이 그것이다.
이 같은 야당의 반론에 의거해볼 때, 논란이 되는 문제는 첫째 연합제 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가 하는 문제와, 둘째 이번 합의가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연합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여부를 묻는 전자의 문제와 관련, 연합제와 관련해 그 동안 제기됐던 통일방안을 간단히 정리하면 오른쪽 표와 같다.
오른쪽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합제 안은 노태우정부 시기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핵심적 내용이며, 김영삼정부기에 들어 3단계 안으로 발전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핵심적 내용이다. 나아가 그것은 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에도 그 첫 단계로 수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연합제 안이 김대중 대통령의 개인 의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태우정부 및 김영삼정부 통일방안의 핵심적 내용으로 출발해 대통령 당선 이전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에 의해 수용된 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연합제 안은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어느 정도 연합제 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 첫 이유는 연합제 안은 그것이 제시된지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별다른 논란이 제기되지 않았으며, 정부당국 및 관련 학자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남측의 합리적인 통일방안으로 간주돼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연합제 안이 노태우정부 및 김영삼정부 등 정부당국에 의해 제시됐고,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에 의해서도 수용됐다는 점도 국민적 합의가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노태우정부 및 김영삼정부를 이어받은 한나라당이 연합제 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여부를 묻는다는 사실 자체가 자가당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연합제와 연방제의 쟁점

다음으로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확인한 이번 합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즉 그것은 북측의 연방제 안의 내용을 더 많이 수용한 것인가, 아니면 남측의 연합제 안에 가까운 것인가? 원래 ‘과도기적’ 연방제 안이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은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남과 북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 밑에서 남과 북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를 실시하는” ‘완결형’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으로 발전했다. 즉 고려민주연방제는 과도기적인 통일방안이 아니라 더 이상 변화가 없는 최종적인 형태의 통일방안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그러나 1991년 김일성의 신년사는 ‘완결형’ 연방제 안의 변화를 시사했는데,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해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높여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그것은 ‘점진적’ 연방제 안이라 지칭될만 했다.
이번 합의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표현은 1991년에 표현된 점진적 연방제를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중앙정부가 명실 공히 국방권과 외교권을 갖는 ‘완결형’ 연방제라 한다면, 이에 대비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특히 남측의 연합제와 공통성을 갖는 연방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향후 연방제로의 발전을 전제한 연합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합의는 남측이 북측의 연방제 안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북측이 남측의 연합제 안을 수용한 측면이 더 크다. 따라서 공동선언문의 합의가 “북쪽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며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듯한 표현에 대해 많은 국민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이회창총재의 반론은 별반 타당성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남측의 연합제 안을 일정하게 수용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 우리는 연합제 안이 통일과정의 중간 단계로서 제시되고 있지만 그 안의 실제적 내용은 상당 기간에 걸친 남북한의 ‘공존’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북한은 일거에 통일을 이루는, 그러나 그 실현성은 크지 않았던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고수해왔던 북한이 이제는 점진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보다 큰, 그러나 일정 기간 동안 공존 기간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통일방안을 선호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던 것이 이번 합의의 핵심적인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연방제 통일방안을 언급하고 있지만, 북한의 우선적인 관심은 상당 기간에 걸쳐 공존 상태를 유지하는 연합제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 이번 합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북, 일정기간 ‘공존’으로 입장 변화

나아가 이상과 같은 해석은 6·15공동성명 전체에 대해서도 유효할 것이다. 즉 6·15성명은 첫 두 항에 걸쳐 통일문제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언급이 당장의 남북한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기보다는, 연합제 안의 강조가 시사하듯, 궁극적인 통합을 위한 중간단계로서의 ‘공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남북의 흩어진 가족의 교류와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논의키로 한 것이나,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약속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공존을 위해서이다. 물론 그 공존이 적대적 의존관계에 비탕을 둔 과거의 공존이 아니라 협력적 의존관계에 바탕을 둔 미래의 공존을 의미함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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