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40 (금)
지상논쟁 : 도덕·윤리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지상논쟁 : 도덕·윤리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29 15:12:50

우리신문은 지난 182호(6월 19일자)에 도덕 윤리 양성과정 설치를 둘러싼 학계의 이견을 조망하기 위해 철학계와 교육학계간의 지상논쟁을 마련한 바 있다. 이후 철학계의 입장을 전달한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가 박부권 동국대 교수의 글에 대해 반박문을 보내왔다. 이에 대해 박 교수 또한 반론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와 우리 신문은 두교수의 글을 게재한다.

박부권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
누락된 논의과정, 타당성부터 다시 검토해야

손동현 / 성균관대·철학과

박교수의 글은 문제의 교육부 조치에 대한, 글로 쓰여진 교육학계의 첫 반응이라는 점에서 필자에게는 소중한 자료다. 박교수의 의도는 물론 교육부의 조치에 대한 철학계의 반발이 부당함을 지적하는 데 있었다. 아무튼 필자로서는 그의 반박문에 반영된 교육학계의 의견을 명료히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이 곧 교육부의 의견과 정확히 합치함을 다시 한 번 명백히 확인할 수도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물론 안되지만, 거기에 오해 내지 무지에 근거한 확신이 있거나 특히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생산적 논의를 위해서라도 이는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뜻에서 몇 가지 명백히 해 두고자 한다.
박교수의 글은 ‘교육부의 조치가 교육학과에 대한 특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철학계가 이를 특혜라고 보고 교육학과 교육학과에 비난과 매도를 퍼부은 것은 부당하니, 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는 것이 그 요지다. 그는 실제로 글 전체를 상기 조치가 왜 교육학과에 특혜가 아닌지를 해명하는 데 바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는 ‘학문의 성격으로 볼 때 도덕·윤리교사 양성은 어느 학과가 담당하는 것이 더 타당한가 하는 문제 등은 별도로 논의할 가치가 있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자신의 해명 자체를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

‘특혜’ 비판 아닌 ‘부당조치’ 철회 요구

생각해 보자. 학문의 성격으로 볼 때 도덕·윤리교사 양성은 어느 학과가 담당하는 것이 더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아직 논의거리라고 한다면, 이런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논의는 그만두고 철학계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채) 교육학과를 윤리교사 양성의 담당학과로 기정사실화시킨 교육부의 조치가 어찌 교육학과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실은, 필자도 그렇지만 철학계에서는 상기 조치가 “교육학과에 대한 특혜조치이니까”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이 학문 및 교육이론상 “부당한 조치이니 이를 바로잡으라”고 교육부를 향해 외쳤을 뿐이다. 박교수가 단정하듯이 교육학과를 비난, 매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교육학이라는 학문을 폄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치 자체가 정당한 것이었다면 시행과정에서 교육학과측에 다소 유리하게 됐다 하더라도 철학계 전체가 이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원칙적으로 정당함과 부당함을 먼저 가리고 정당한 일에 한해 이를 시행해야 하며, 이 때 비로소 방법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지 하는 것이 협의되어야 하지 않은가. 원칙적인 문제는 은폐된 가운데서 어물쩍 넘기고, 그 시행상의 형식적 적법성의 요건을 갖추느라 온갖 꾀를 다 짜낸 것이 이 조치가 아닌가.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문용린 장관일 것이다. 이런 조치를 놓고 박교수 또한 이 형식적 차원에 머물며 교육부 관리들이 늘어놓던 내용과 똑같은 항변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것은 바로 철학과측이다. (사실 교육부가 취하는 교육학과측과의 협조적인 태도와 철학과측과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문제의 교직과정 운영 신청에 관해 -교직 공문은 대개 사범대로 가는 관행 때문에- 철학계는 거의 모르고 있었던데 반해, 교육학과들에는 교육학과장협의회측과 협의하여 시한을 연기해 준 것이 그 한 예다. 교육원리에 입각해 원칙에 충실하게 정책을 정하고 시행하면 될 일을, 교원정책이 무슨 로비의 대상이라도 되는 양 “교육학과, 국민윤리학과에선 벌써 다녀갔는데 철학계에서는 왜 이제서야 교육부를 찾아왔냐”고 되묻는 교육부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한 번 따져보자. 박교수나 문장관이나 교육부관리나 입을 맞추어 주장하는 것이 바로 “도덕·윤리교사 자격을 얻으려면 42학점이상으로 편성된 도덕·윤리교사 양성과정을 이수해야 하니까 어느 과 학생이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이 42학점 상당의 교과과정은 교육학과, 철학과, 정치학과 등의 과목들로 이루어지니까 어느 과에서 주관을 하든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반인들은 간파하기 어려운 함정이 있다. 이 42학점 중 의무적으로 지정된 과목 혹은 영역이 얼마나 되나. 14학점뿐이다. 그것도 우리가 보기에 윤리학관련 과목은 그 중 단 두 과목 6학점뿐이다. 42학점 전체를 도덕·윤리 교직과정으로 지정해 놓는다면 모를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교육학과에서 이 과정을 설치할 때와 철학과에서 이를 설치할 때, 그 교과 내용이 현격히 달라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명백한 일이다. 과연 교육학과에 설치된 그 과정이 도덕·윤리 교직과정으로 합당한 것인가? 박교수도 스스로 자문해 보면 알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합당하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교묘히 엮어 놓은 것이 바로 교육부의 새 규정이다. 그러니까 이 규정을 바꾸라는 것이다.

42학점 규정의 문제점

그러니, 이런 시행상의 세부사항을 두고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교육학과의 교육과정이 대체적으로 약간만 보충하면 윤리교사양성에 적합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이 원칙적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따져보았어야 할 일이다. 이제라도, 박교수 자신도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한, “학문의 성격으로 볼 때 도덕·윤리교사 양성은 어느 학과가 담당하는 것이 타당한지”, 이 문제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결론을 토대로 이 교원 정책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이 정책의 시행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철학계에서 “토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교육부 관리들까지 초청해 공개토론회를 갖자고 제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더, 교육학과 학생들의 부전공 자격제도를 놓고 우리가 이를 특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 주장은 어느 과 학생이든 도덕·윤리교사가 되려면 적어도 철학을 부전공으로 하여 윤리에 관한 철학적 학업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학과 학생들이 철학을 부전공으로 수학하여 윤리교사가 된다면, 이는 장려할 일이지 특혜 운운하며 막을 일이 결코 아니다.

#
손동현 교수의 반론에 대한 답변
담당주체 논의 앞서 과목 존폐여부 따져야

박부권 / 동국대·교육학과

필자는 2주전 교수신문의 지면을 빌어 새로운 교육부 고시가 교육학과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라는 철학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따라서 부당한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손교수는 필자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가 교육학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특혜적 조치라고 주장한다. “학문의 성격으로 볼 때 도덕·윤리교사 양성은 어느 학과가 담당하는 것이 더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아직 논의거리라고 한다면, 이런 논의를 거치지 않고 교육학과를 윤리교사 양성담당학과로 기정 사실화시킨 교육부의 조치가 어찌 교육학과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가 그의 논지이다. 필자는 교육부의 새로운 조처로 교육학과가 받은 별도의 혜택이 없기 때문에 이 논의 자체가 특혜시비와 관련해서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본데 반하여, 손교수는 그것이 특혜시비를 가리는 열쇠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번 글의 말미에서 이 문제를 학문의 장으로 옮겨 계속 논의하자고 한 것은 이 문제는 그 성격상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리·도덕의 본질을 밝히는 철학의 논리와 윤리·도덕성의 형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교육의 논리는 그 구조부터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필자의 제안은 철학계가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이미 도달하고 있는 이 논의의 결론에 필자가 동의하고 있지 않음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었다. 철학계가 이 문제에 대하여 진정으로 논의하기를 원했다면 논의의 결론은 마땅히 유보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필자는 철학계가 도덕·윤리교사양성 학과속에 교육학과가 포함된 교육부의 새로운 고시를 교육학과에 대한 특혜로 규정하는 순간 이미 논의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특혜’라는 말 속에는 교육학은 도덕·윤리와는 거리가 멀고 교육학과는 도덕·윤리교사 양성에는 부적합한 학과라는 판단이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윤리과목, 존재이유 검토 필요

필자가 계속적인 논의를 역설했다고 하여, 이 질문에 대하여 만인이 동의하는 답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논의가 교육학과 혹은 철학과 하나로 결론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교육학계와 철학계가 이 문제를 놓고 서로 갑론을박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과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들이 보다 분명해 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어 도덕·윤리교과와 관련하여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즉 일제시대에는 ‘수신’으로, 군사독재시대에는 ‘반공·도덕’으로 일제의 지배와 독재체제의 정당화를 위하여 특별히 고안된 이 과목이 새 천년이 시작된 민주화된 오늘날의 우리사회에도 계속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은 어느 학과가 도덕·윤리교사양성에 더 적합한가 하는 질문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한다. 도덕교육은 별도의 교과로 설정될 것이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공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듀이는 독재체제가 아닌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직접적인 수업을 통하여 도덕성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감상적 마술’에 의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만약 듀이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독립교과로서의 도덕·윤리교과는 그 존립근거를 잃게 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 이라면, 도덕·윤리교사양성을 어느 학과가 담당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손교수의 또 다른 주장은 특혜시비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철학계 일반의 우려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의 핵심은 새로운 도덕·윤리교사양성과정이 ‘기본이수영역’의 학점수를 14학점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탓으로 대학이 임의로 개설할 수 있는 과목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육부는 대학이 제공하고 있는 학위과정의 과목들을 지정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그것이 대학의 자율적인 재량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계의 우려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만약 교육학과가 도덕·윤리교사양성 과정을 굳이 새롭게 개설하려고 한다면, 전체과목을 철학, 윤리과목으로 구성해야한다는 규정이 없는 현재로서는 이를 막을 도리가 없고, 그렇게 되면 도덕·윤리교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조차 교육학과와 분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철학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상황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 번 글에서 이 점에 대하여 필자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다시반복하면 도덕·윤리교사 양성과정을 새롭게 설치하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와 그 과정의 주관학과를 어느 학과로 하느냐는 전적으로 각 대학이 결정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설혹 어떤 대학의 교육학과가 도덕·윤리교사 양성과정을 새롭게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육학과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없다. 다섯 과목의 중복과목을 인정 받는다고 하더라도 도덕·윤리교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학생들이 교육학 전공과정과는 별도로 취득해야 할 학점수는 27학점이다. 윤리학 부전공 21학점으로 도덕·윤리교사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7학점이나 더 이수해야 하는 이 과정을 굳이 선택할 학생이 있겠는가?

주관학과 결정은 해당 대학 몫

많지는 않겠지만 교수의 편의를 위하여 그리고 학과의 세를 확장할 목적으로 별도로 이 과정을 설치하고자 하는 대학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구조조정이 대학사회의 화두가 되고있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자원의 낭비와 비능률을 초래하게될 이러한 기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대학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이 과정을 꼭 새롭게 설치해야 하는 대학이 있을 수 있고, 공고롭게도 그것을 주관한 학과가 교육학과일 수도 있다. 이 때 만약 철학계가 그 대학의 도덕·윤리교사양성과정의 구성을 주도한 학과가 교육학과라는 이유만으로 그 과정이 도덕·윤리교사양성과정으로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철학계의 자의적인 기준을 교육학과에 강요하는 것일 뿐만아니라 그 대학의 학문적 양식과 주체성마저 의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