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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영웅본색의 추억
[문화비평]영웅본색의 추억
  •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
  • 승인 2006.11.25 0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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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우리 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였다고 꼽고 싶은 정운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비주류 경제학자였던 그가 이른바 메이저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길 때부터 그의 칼럼을 둘러싼 말년의 논란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세상에 남긴 그의 마지막 칼럼이, 그의 강의나 글의 가장 열렬한 청중이자 독자였을 386세대들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홍콩느와르필름 “영웅본색”의 제목을 빌어 바로 그 386세대의 도덕성을 질타한 것도 인상적이다. 사회구조나 시대변화와 무관하게 개인의 “도덕성”을 논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논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느냐를 화제로 삼은 술자리에서 경제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인의 에토스 또는 품성이 있다는 점에 관해 열변을 토하다가 “혹시 주사파?” 라는 농담 섞인 반응에 머쓱해져 웃고 말았다. 사실 버블세븐이 어떻고 하면서 누구나 버블을 얘기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버블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결국 버블이란 재화나 서비스의 진정한 내재적 가치에 비해 너무 높은 시장가격을 뜻하는 용어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부동산의 진정한 가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10대이던 시절에 지어진 대치동이나 압구정동 아파트의 진정한 가치를 그만한 아파트를 새로 짓는데 필요한 생산비로 산정한다면, 그것은 결코 10억을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크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신문기사에 나온 가십거리처럼, 20억짜리 강남아파트를 살 돈이면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나오는 이자로 서울시내 최고급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매일 잘 수 있다는, 이른바 기회비용의 개념을 써서 버블을 증명하는 방법도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최고급호텔 근처에는 논술학원도 없고, 00동에 산다는 문화적 상징도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회비용을 이렇게 산정하는 것에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엄밀하게 말해 부동산가격은 기본적으로 내재가치를 갖는 그 무엇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가격으로 정의되는 렌트(지대)일 수밖에 없다. 경제학 외부에 있는 이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얘기이겠지만, 실로 드물게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이 의견일치의 가능성을 보이는 곳도 이 지점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렌트인 것에 대해 버블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논하는 포스트모던한 몽환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예의 품성론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사회현실의 원인을 최종적인 수준에서 개인의 품성이나 도덕성으로 귀착시키는 논의에서는 사회과학의 역할이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제대로 된 정책이 보수언론과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 때문에 무력화하고 있다는 정책관계자들의 탄식이나 뜬금없는 주사파 농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시장에 맡겨 내버려 두라는 주장조차도 역설적으로 그 밑바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회과학적 분석의 무력함 또는 무용함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지금의 “좌파 신자유주의정권”의 공과를 가리고자 한다면, 그 가장 큰 잘못은 신자유주의의 허물까지도 좌파가 뒤집어쓰도록 만들고, 나아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역할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초래함으로써 적어도 대중의 의식 속에서 사회과학의 죽음을 가져온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경제학의 자리를 우생학이 차지하고 구조에 대한 치밀하고도 냉정한 분석이 무능력한 개인에 대한 실망의 반사작용으로 능력 있는 초인에 대한 열망으로 대체될 때, 어떤 파국적 결과가 초래되었는가를 역사는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본색”에 대한 추억은 깃 세운 트렌치코트(아니, 바바리코트라는 콩글리쉬가 더 어울린다!)에 성냥개비 질근거리면서 쌍권총으로 악당들을 일망타진해 줄 주윤발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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