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3:15 (목)
불국정토 상징하는 기하학 세계
불국정토 상징하는 기하학 세계
  • 강병희 한국외대
  • 승인 2006.11.24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24)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한국은 석탑의 나라이다. 벽돌로 탑을 만든 중국이나 목조식 탑을 쌓은 일본과 달리 우리 선조들은 견고한 화강함을 쪼아 단아하고도 자연스러운 석탑을 완성했다. 이중 최고로 치는 것이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불국정토의 이상을 구현한 불국사 금당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석가와 다보를 통해 석조예술의 한 절정을 발견할 수 있다.

□ 다보탑(국보 20호)은 개방적인 테라스 형태의 벽면구성을 통해 공중에 부양되는 듯한 기적같은 종교적 출현을 조형화하였다. 실로 ‘돌을 떡주무르듯’ 했던 장인의 솜씨나 장식적이되 지나치지 않는 조형미는 신라 석탑예술의 수준을 솜씨있게 드러낸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의 두 탑은 기록에 석가탑과 다보탑이라 전한다. 관련 내용은 ‘법화경’ 견보탑품에 전한다. 즉 과거의 부처님이셨던 다보불이 장래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듣고 거룩함을 증명하겠음을 맹세하고 원하였는데 석가모니가 사부대중과 함께 법화경을 설하자 약속대로 그의 전신탑(온 몸이 모셔진 탑)이 땅 속에서 솟아나 공중에 머무르며 찬양하였다. 이어 석가모니가 탑문을 열자 자신을 증명한 뒤 자리를 나누어 함께 하였고 이 때 보탑에 공양하기 위해 모든 세계의 부처님들이 보살들과 함께 이르자 세상의 더러움이 사라지며 불국토로 정화되었다는 내용이 현장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두 탑은 이 내용의 두 주인공으로 이곳이 불국토임을 알려 주는 상징이다. 현재 현겁의 부처님으로 열반하신 석가모니는 원시불교시대부터 조성, 발전된 사리안치의 탑으로, 오랜 과거, 동방으로 한량없는 천 만억 아승지 세계를 지나 있었던 보정(寶淨)이라는 나라의 부처님인 다보불의 전신사리탑은 몸이 모셔진 공간이 있는 희귀한 양식의 전각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석가탑에는 기단 주위에 8개의 팔방금강좌를 두어 사부대중에 둘러싸인 석가모니를 군더더기 없이 상징화시켰다.

이상세계의 건축들은 기하학적인 비례를 보인다. 완전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불국사는 43당척을 기준으로 각 건물의 위치와 크기의 비례를 정함으로서 정연한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도 마찬가지다. 43당척의 1/3이 양 탑의 지복석의 길이와 근사하며 이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석가탑은 7세기 감은사지탑 등에서 보이는 초기 전형양식의 장중함에서 씩씩함만을 거두어 수려함을 덧입혔다. 남성적이면서도 잘 생긴 미청년의 자태다. 삼국시대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과 전탑을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된 석탑은 신라 통일 직후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안되었으며 이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다시 정리된 것이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8세기 전형양식이다. 이는 이후 우리 석탑의 보편 양식으로 계승되면서 우리의 미감을 대표하는 문화재의 하나가 되었다. 균형잡힌 비례는 반듯함을 이루며 날렵하게 뻗은 지붕돌은 탑의 견고함을 부드럽게 덮는다. 지붕의 경쾌함은 직선으로 뻗은 우동마루(사면의 지붕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감각을 더해 주는 것이 옥개석 위의 강조된 탑신 받침이다. 이는 오히려 백제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감각으로 삼국 통일이 신라를 중심으로 옛 백제와 고구려 문화를 통합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다보탑은 정토건축을 표현한 불국사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난간, 기둥, 지붕으로 구성된 누각식 건축은 이국적이며 공예적이다. 개방적인 테라스 형태의 벽면 구성은 시각적으로 건축물의 중량 감각을 줄임으로써 공중에 부양된 다보탑의 기적 같은 종교적 출현을 조형화시켰다.

탑은 기단부터 차례로 사각, 8각, 원형의 기하학적 평면이 균형 있게 감축하며 중첩되었는데 각 층은 다양한 모습의 난간, 기둥 등의 부재가 벽체로 막힘없이 결구되어져 내, 외 공간이 겹쳐진다. 더구나 각 부재의 선은 결구시 일정한 형태로 조합될 수 있게 유려한 곡선으로 세밀하게 다듬어져 있어 빛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음영이 드리워진다. 실로 단단한 화강암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렇듯 기교 많은 여러 형태의 목조 건축 부재를 돌로 만들어 짜 맞춘 모습은 ‘돌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누군가의 감탄사에 동의하게 한다. 불국토의 완전함을 설명해 주는 정교한 건축적 표현이다. 이런 모습은 범영루의 석축, 청운교 백운교의 홍예와 난간, 석축 전면의 긴 난간으로 이루어진 개방적 회랑, 안양문 앞 연화교의 연꽃잎 표현, 각 건물 계단 소매돌의 곡선 장식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당대의 불국사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 석가탑(국보 21호)은 불국사 금당을 바라보고 왼쪽에 위치에 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3층석탑 형식으로 균형잡힌 몸매와 경쾌한 지붕선은 신라인의 단아하고도 조화로운 미의식을 잘 보여준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일이다. 떠나기 전,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한다는 두 탑을 실제로 본다는 생각에 조금은 가슴이 설레었다. 무영탑의 전설과 여러 소개 글들은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다. 그러나 불국사 관람은 들어서면서부터 평범했으며 ‘조금 더 가면....’ 하는 기대감은 대웅전 영역에 들어설 때까지 충족되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으로 도착한 두 탑은 아름답고 특이했지만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하며 허겁지겁 비로전과 관음전을 올라 보았지만 이미 이들의 의미가 제대로 들어 올 상황이 아니었다. 불국사와 두 탑을 의미 있게 감상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감동은 불국사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의도했던 예술적 환기를 일으키며 준비되어야 하며 청운교 백운교를 올라 두 탑에 도달한 순간 절정에 이르러야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현재 불국사는 석재 유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목조 건축물들이 17세기 양식이다. 또한 1970년대 복원공사는 대 석축 앞 구품연지를 재현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세계관 아래 자연적이고 절제 있는 단아한 공간이 선호되던 시대였다. 임진왜란 후 17세기 건축은 이전과는 다르게 장식적인 요소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당나라 문화의 영향 아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 국제적이고 사실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세련된 문화와는 아주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양 탑은 완전한 원형을 지키고 있지 못하다. 석가탑의 상륜부는 실상사삼층석탑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어 다보탑과의 조화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으며 다보탑은 현재 난간이 있어 화려한 8각과 원형의 상층부와는 달리 사각의 하층부에는 사방 돌계단 양쪽에 기둥(법수석)만 남아 있다. 기둥 뒤의 흔적으로 보아 계단과 사각형 기단 위에도 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단 위 사방을 지켰던 수려한 사자도 한 마리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내부적 상처도 치명적이다. 세계 최초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비롯한 금은 사리함이 출토된 석가탑과는 달리 다보탑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완전 해체되어 복원되었으나 보고서도 없고 출토된 사리구도 사라졌다. 당시 작업에는 노무자도 한국인을 쓰지 않았으며 다만 소나무 언덕에 숨어서 바라본 지역민이 탑 속에서 하얀 보자기로 싼 꾸러미를 꺼내 옮기는 모습을 보았다는 내용만을 전할 뿐이다. 이런 저런 상황은 두 탑을 온전히 느끼기에 어려움을 주며 감동은 보물찾기와 오랜 응시 뒤에 찾아온다.

세월이 반영되는 것이 건축예술이다. 단아한 조선의 건축물들에 둘러싸인 석가탑과 다보탑은 정토의 꿈은 다소 탈색되었지만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두 시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새로운 미감을 창출하고 있기도 한데 부드럽게 반전하고 있는 추녀와 아담한 회랑 사이로 양 탑의 상층부가 솟아오른 모습은 흡사 우리들의 가슴마다 숨겨진 정토를 한 자락 펼친 듯, 막 벌어지기 시작하는 꽃봉오리처럼 경이롭다.

간다라 지역 답사 때의 일이다. 샌들을 신은 보살상의 아름다운 발 조각편을 보았을 때  아쉽게도 그 조각상이 온전하게 사원에 있을 때의 감동은 느낄 수 없었지만 그 작은 조각은 전체 보살상의, 아니 그 시대의 예술적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남겨진 불국사와 상처 입은 두 탑에 담겨진 신앙적 구현도 당시의 고양된 종교미술의 경지를 짐작해 보기에 충분하다. 한 예술품의 완전함은 작은 부분에도 그대로 담겨지기 때문이다.

 강병희 / 한국외대·미술사

필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의 다각다층석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열하일기를 통해 본 요동백탑’, ‘흥천사 사리전과 석탑에 관한 연구’등의 논문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