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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고대도시』(퓌스텔 드 쿨랑주 지음, 김응종 옮김,아카넷刊)
이책을 주목한다:『고대도시』(퓌스텔 드 쿨랑주 지음, 김응종 옮김,아카넷刊)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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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4:50:30

김덕수 / 목원대·사학과

일반적으로 우리는 근대 서양 문명의 뿌리가 고대 그리스 로마문명에 있고, 근대 시민사회는 아테네 민주정치, 로마 공화정치, 법에 의한 통치, 시민적 자유, 평등, 정의 등 고대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로마 사회는 근대 서양사회의 사상과 제도의 발전에서 주요한 모델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고대도시’의 저자 퓌스텔 드 쿨랑주는 “그리스와 로마는 (서양 근대사회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사회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저자는 그 근본적인 차이를 고대인의 신앙관에서 구했다. 퓌스텔의 ‘고대도시’는 부제에도 있듯이 그리스-로마의 법, 제도를 그들의 신앙의 형성 및 변화를 통해서 해명한 책이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종교관을 볼 때에 비로소 그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 그리고 사회의 발전과 해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고대인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다. 그는 좋은 대접을 받은 죽은 자는 수호신이 되어 산자의 생활을 돌보지만 소홀한 대접을 받은 자는 악령이 되어 산 자를 괴롭힌다는 관념이 가족 종교를 낳았다고 본다. 이러한 가족 종교는 소유권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각각의 가족은 저마다 관리해야할 신성한 영역이 있었고, 사유 재산권은 가족의 신, 신성한 불, 망혼의 돌봄으로 거룩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경계신이 밭의 경계를 지켜주었다. 요컨대 인간에게 땅을 소유케 하고 땅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준 것은, 근대처럼 법이 아니라, 가족 종교였던 것이다. 결국 가족 종교는 각 가정을 조상신들의 가호하에 사제인 가장이 다스리는 ‘독립된 왕국’을 건설케 한 것이다.
이러한 가족 종교와 가장의 권위 등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게노스(겐스, 씨족), 프라트리아(쿠리아, 형제단), 필레(트리부스, 부족)를 거쳐 폴리스(키비타스, 즉 도시국가)의 조직 원리로 이어졌다. 도시는 사제로서의 왕이나 정무관들이 통치하는 거대한 가족이었다. 가족의 수호신들이 있었듯이 도시의 수호신들이 있었다. 도시가 창건될 때 왕의 권력의 핵심에는 사제로서의 기능이 있었고, 그 기초위에 정치적 수장, 군사적 수장, 재판장으로서의 권력이 왕에게 덧입혀졌다. 법 역시 신으로부터 유래했기에 신성한 것이었고, 폐지되거나 변경될 수 없었다. 고대도시는, 적어도 근대도시와 달리 종교적 권위과 정치 권력이 분화되지 않았고, 정치, 군사, 법률 등은 종교적 권위에 근거했다. 고대인에게 애국심은, 근대인과는 달리 종교적인 의무였던 것이다.
고대도시가 해체되는 과정 역시 퓌스텔은 도시국가 내부에서의 신앙의 변화, 그리고 대외적 요인으로 로마의 정복이라는 사건으로 설명한다. 고대인의 종교는 도시국가의 등장과 함께, 그리고 인간 정신의 진보 덕분에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 인간 밖의 자연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되었고, 죽음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자연의 신들에 대한 관념이 진화해서 우주적인 신, 한 도시를 뛰어넘는 신들에 대한 관념이 등장했다. 이제 가족종교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신관의 변화에 이어 철학이 등장해서 우주의 원리, 최고 존재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소피스트들은 인간 사회의 원리와 규칙들, 가치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제 전통이 아니라 이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래서 인간 이성이 전통적 관념을 비판하고 나섰을 때, 퓌스텔에 따르면 종교에 기초한 고대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의 정복과 팽창 역시 퓌스텔은 로마인들의 종교관에 기초해서 설명한다. 고대 도시의 하나였던 로마의 독특성은 신화의 시대부터 그 뒤까지 이어온 인종적 문화적 혼합성이었고, 다른 종족들이 종교 때문에 고립되었다면, 로마인들은 그들은 팽창에 종교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로마에는 트로이의 신들, 라틴 신들, 에트루리아 신들, 그리스 신들, 모든 신들이 모여있었다. 지중해의 도시국가들의 폐쇄적 종교관이 무너지고 있을 때 포용력있는 종교를 가진 로마의 팽창은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결국 도시국가들의 경쟁 무대였던 고대 지중해 세계는 로마제국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고대 사회의 긍극적 승리자는, 퓌스텔에 따르면, 로마인이 아니라 절대적 권위를 가진 유일신을 숭배하던 기독교였다.
퓌스텔의 ‘고대도시’는 풍부한 문헌자료를 제시하면서 고대인의 종교관, 신앙관의 독특성을 밝히고 그들의 관념이 그들의 법, 제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분석한 고전적인 책이다.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를 근대 시민사회와 너무 쉽게 동일시 하는 근대인들의 시대착오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1864년 출판된 이 책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21세기 초두에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고대 세계를 당시 사람들의 생각속으로 들어가서 해명하려는 역사가로서의 저자에 대한 신뢰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저자는 한 사회의 이해에 있어, 한 시대를 지배했던 신앙관의 이해가 중요함을 실제 역사 연구를 통해서 잘 보여주었다. 비 전공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개념들, 사건들, 용어들에 대해 상세하게 역주를 달아준 역자의 친절함과 탁월한 문장력 때문에 우리의 2천년 전의 그리스 로마 사회를 쉽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속화된 현대인들에게 퓌스텔의 ‘고대도시’는 그리스 로마 사회에 대한 많은 오해를 바로 잡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다.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을 아테네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바울의 말은 퓌스텔의 논증에 대한 하나의 지지 선언일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아! 너희들을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사도행전 17:22, 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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