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8:55 (금)
저자인터뷰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 펴낸 정옥자 서울대 교수
저자인터뷰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 펴낸 정옥자 서울대 교수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29 14:48:52

학계의 관심이 ‘근대’에 쏠려있는 요즘 정조대왕에 대한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역대 군주 중 유일하게 문집(‘弘齋全書’)을 남길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이 충분했으며, 그의 治世는 ‘농경사회에서 상공업사회로 전환되는 사회적 변혁기’ 위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최근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일지사)를 펴낸 정옥자 교수(서울대 국사학, 규장각 관장)는 이러한 시도들에 대해 다소 ‘쌀쌀한’ 편이다. 여기서 쌀쌀한 입장이라는 記述은 두 가지 사실에서 드러난다. 첫째, ‘근대의 맹아’와 관련한 영조의 업적과 한계에 대한 물음에 대해 오히려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 “그 물음은 근대의 개념을 어떻게 전제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시도는 결국 오늘의 입장에서 소급하여 당대를 파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보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 질문은 문제틀의 구성이 거꾸로 된 것이라고 본다.”둘째, 정조의 이미지가 개혁적인 방향으로 과대포장된 측면이 많다는 사실의 지적에서 다시 그 쌀쌀함이 느껴진다. 즉, 정조가 말하는 實學이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자꾸 근대와의 연관이 시도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교수는 ‘일득록 연구’를 통해 정조가 얘기하는 실학이 正學이며 經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실학이라는 용어는 동아시아 3국에서 모두 사용됐으며, 어느 시대에서나 사용된 단어이다. 위당 정인보도 실학을 말하지 않았나. 그 당시 가장 필요한 학문을 실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義理와 名分을 중히 여기던 조선사회가 이해관계를 따지는 실리주의사회로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자 정조는 실학으로 경학을 내세웠다. 삶의 하부구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의 관점이 그걸 왜곡하고 있다.”그렇다면 정조가 행한 개혁적 면모는 시대적 상황에 떠밀려 진행됐던 것일까. 예컨대 정조의 인재 양성의 목적과 친위세력으로의 몫을 담당하던 규장각에 북학론을 수용한 일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서얼의 신분상승운동인 庶孼通淸 운동의 진두지휘와 상업개혁 자율화정책인 辛亥通共 政策의 실시 역시 마찬가지다. 정교수는 정조를 보수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그걸 대립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흑백논리다. 분명한 사실은 정조가 영민하고, 학문을 많이 쌓은 군주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적극적이고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무언가를 파악할 때는 특정인의 의지와 상황 변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특정인의 의지가 전반적인 상황을 규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의지’ 연구는 철학의 영역이고, ‘상황 변화’는 역사의 영역일 터이다. 이 둘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흑백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정조의 수상록 연구’ 제1장인 ‘정조시대 연구 총론’이 술술 읽히는 이유는 바로 ‘상황 변화’와 ‘정조의 의지’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를 흥미 있게 써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對淸復讐論과 對明義理論이 각각 북벌론과 尊周論으로 이어지는 과정, 조선중화주의의 성립, 정조의 개혁 등이 서술되어 있다. 세간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왕권과 臣權의 관계도 이 속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17세기 붕당정치에서 18세기 탕평정치로 넘어가면서 왕권이 강화되었음은 분명하다. 탕평정치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君師가 필요하다. 숙종, 영조, 정조가 군사의 표본이다. 그런데, 정조가 죽고 나니 그 권력을 감당할만한 군주가 등장하지 못했다. 이로써 권력은 외척 세력에게 넘어갔다. 그게 개항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책에서 정조 20년(1796) 절대 왕권에 대한 신하들의 몸사림을 지적하며 정조가 왕권 강화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일득록’은 그 스스로 날마다 반성하려는 뜻에서 閣臣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했다는 정조의 어록이며, 정교수는 정조에 대한 대중적인 책의 집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기돈 객원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