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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走筆을 경계함
[대학정론]走筆을 경계함
  • 김인환 논설위원
  • 승인 2006.11.24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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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르메는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책다운 책, 한 권을 쓰려고 시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프루스트는 “모든 성당은 짓다 만 성당”이라고 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헌신하여 지은 위대한 성당들 어느 것에도 짓다짓다 지쳐서 마무리를 휘갑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둔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에 착상하여 예순두 살에 완성한 스라파의 ‘상품에 의한 상품생산’은 부록을 합해서 95 쪽이다. 우리 원고지에 옮겨 적으면 6백 장이 채 못 될 것이다.

책방에 들러 경제학 책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두 번 놀랐다. 천 쪽을 넘는 책들이 적지 않은 데 놀랐고, 그 책들의 내용에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데 놀랐다. 우리말로 된 경제학 책들을 보면서 나는 스라파가 얼마나 위대한 학자인가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라파는 “자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새롭게 대답하였다.

종이조차 수입하는 나라에서 종이를 낭비하는 것은 악덕이 아닐까. 내용이 부실한 글을 중언부언하며 종이를 허비하는 것은 악덕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논문을 쓰면 연구비를 받고 교과서를 쓰면 인세를 받는다. 연구비 신청 절차를 번거롭게 여기어 쓰고 싶은 논문만 쓰는 교수들은 대체로 교과서를 쓰지 않으므로 연구비뿐만 아니라 인세도 받지 못한다. 유능한 자에게 상을 주고 무능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이 경영과 행정의 기본 방침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방침이 내용 없는 물량주의로 시행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빨리 짓기(走筆)’를 천한 것으로 경멸하였다.

명말청초의 평론가 김성탄은 외워야 할 책과 읽어야 할 책과 불살라야 할 책을 구별하였다. ‘시경’, ‘서경’, ’주역’은 성인의 글이다. 잇새에 넣고 이야깃거리로 삼지 말고 반드시 외워야 한다.

‘맹자’, ‘장자’, ‘두시’는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끊어지고 기력이 탕진될 때까지 공들여 얻은 글이다. 여자들이 치마 걷고 물 건너듯 조심조심 읽어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여 음탕한 짓을 가르치고 도둑질을 권장하는 책은 붓을 들어 써 갈기고 으스대는 글이다. 글 지은 사람은 마땅히 목 베어야 하고, 책은 마땅히 불살라야 한다.

김성탄은 거짓되고 치우친 책들이 너무 많아 이루 다 불지를 수도 없게 된 17세기의 지적 풍토에 절망하였다.

분량이 성질과 관계와 양식을 억압하는 우리 시대를 보고 김성탄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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