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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논쟁의 추억, 논쟁의 활성화
[문화비평]논쟁의 추억, 논쟁의 활성화
  • 권성우 숙명여대
  • 승인 2006.11.24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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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소설가 박형서가 최근에 펴낸 소설집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에는 ‘논쟁의 기술’이라는 소설이 첫머리에 수록되어 있다.

높은 학식과 뛰어난 논쟁술을 지닌 두 학자가 벌이는 논쟁의 풍경을 이 소설은 ‘유리한 주제의 선정’, ‘은근히 겁주기’, ‘무시하기’, ‘얄밉게 웃기’, ‘말 돌리기와 문답법’,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기’, ‘정신없이 들이대기’, ‘말허리 자르기’, ‘반말하기’, ‘몰아세우기’, ‘괴상한 어법’, ‘딴청 부리기’, ‘막나가기’, ‘서둘러 결론 내리기’ 등의 소제목과 함께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논쟁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실상 박형서가 열거한 ‘논쟁의 기술’은 결코 소설 속의 얘기만은 아니다. 몇 년 전 이른바 문학권력논쟁으로 지칭되는 논쟁의 과정에서 전개된 한 비평가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강준만은 ‘글쓰기의 기본 윤리에 대하여’(월간 ‘인물과사상’ 2002년 1월호)라는 글에서 “말싸움하다가 욕하기”, “누워서 침 뱉고 웃는 병”을 비롯한 15가지 글쓰기 수법으로 요약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나 역시 그 논쟁에 참여했던 터라, 잘못된 논쟁 방식이 얼마나 논쟁을 왜곡시키는가에 대해서 막막한 절망감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그런 논쟁의 윤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논쟁의 혁신과 진전을 위한 제안’(‘논쟁과 상처’)이라는 글을 쓰게 했고, 논쟁 상대방에게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 세밀하게 논의하자’, ‘인신공격적 비난을 삼가자’, ‘안이한 양비론에서 탈피하여 논자간의 차이에 대해서 섬세하게 인식하자’는 제안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문학권력논쟁은 그 비평사적 맥락과 별도로, 논쟁의 다양한 기술, 전략, 은폐된 욕망, 노하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논쟁방법사적인 측면에서의 탐색이 요청되는 테마일 것이다.

박형서의 소설로 모처럼 촉발된 논쟁의 추억은 나로 하여금 우리 지식사회의 논쟁문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문학판, 학계에서 논쟁을 좀 더 성숙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사소한 관행의 변화가 토론과 논쟁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나는 최근에 참가한 한 학술대회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학술대회는 발제 이후에 이루어지는 형식적인 토론을 생략하는 대신 모든 발제문을 대상으로 한 종합토론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

세 시간 넘게 진행되었던 종합토론은 아직 많이 부족했지만 각 발표자 간의, 각 토론자 간의 입장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로 간의 차이를 확인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앞으로 심화된 논의를 위한 지반을 제공할 것이다.

이참에 나는 학술대회 토론 방식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발표에 할당된 시간과 그에 이어지는 형식적인 토론을 대폭 줄이는 대신 종합토론을 적어도 세 시간 이상 할당한다면 문제적인 논문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종합토론이 하나의 소중한 볼거리이자, 학술논쟁의 축제로 기능할 때 그 학회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리게 될 것이며 학술적 담론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유력한 공론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날 학술대회에 어느 때보다도 많은 연구자와 대학원생이 운집했던 점은 바로 그 논쟁과 토론에 대한 갈구 때문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치열한 논쟁을 구경하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본격적인 토론과 논쟁이 학회를 활성화시키고 연구자에게 새로운 의욕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합리적이며 제대로 된 논쟁이 전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는 이 땅의 인문학계와 문학판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유력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학술대회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권성우 / 숙명여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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