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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읽기 : 『에코페미니즘』과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비교읽기 : 『에코페미니즘』과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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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4:46:52
『에코페미니즘』(마리아 미스 외 지음, 창작과비평사 刊, 2000)과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도지 브라이도티 외 지음, 나라사랑 刊, 1994)

구승회 / 동국대·윤리학과

생태학적 상상력의 범위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철학, 사회학, 정치학과의 결합이 두드러진다. 근대 세계에서 주체-강화, 지배-강화를 주도해 온 이들 학문분과들은 최근 2~30년 사이에 급부상하고 있는 녹색 사유와 결부되면서 과거 그들이 성취한 이성적 기획의 결과들을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당혹스러운 주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생태학, 심층생태학, 그리고 에코페미니즘은 이런 사조를 대표하는 경향들로, 현대 생태학적 논쟁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심층생태론, 사회생태론, 에코페미니즘 등의 세 조류는 공히 녹색 외투를 걸치고 나오지만, 그래서 동일한 비판 대상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누가 더 진정한 녹색 사유인가를 놓고, 서로 적대적이다. 이는 어쩌면 맑스주의 없는 시대의 사회변혁운동이 맞닥뜨리게 되는 필연적인 상호 착종일지도 모른다.
남성의 여성 지배를 자연 지배와 등치시킴으로써 생태계 문제 전반을 “남성 때문”으로 환원하는 에코페미니즘은 심층생태론이 환경윤리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며, 인간의 사회성을 무시하고 있고, 그 기본 관념은 생계를 위한 일상의 노동에 근거하기보다는 백인/남성/전문직 종사자의 정치적 태도에 근거해서 논의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하면 심층생태론은 남성-지식인, 남성-엘리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북친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생태학은 좌파적 전통을 따르면서 주로 사회-계급적인 차원에서 생태문제를 분석한다. 사회생태론자는 심층생태론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긴 하지만 에코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북친, 존 클락(John Clark), 자넷 빌(Janet Bhiel) 등 사회생태론자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에코페미니즘의 비판은 사실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 이후에 나타난 부수적인 현상이며, 더욱이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는 인류의 지배와 예속의 역사 속에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점에서 성적 지배를 계급적 지배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에코페미니즘의 정당성을 부인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계 위기와 여성 억압을 동일한 문제로 이해하는 여성주의의 부류이다. 이는 70년대 중반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프랑수아즈 도본느(d’Eaubonne)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원래는 여성해방 ‘운동’의 일환이었지만, 최근에는 학술적 담론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지배와 자연지배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 정치·경제제도,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 저항하고, 전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구생명-유지체계(life-support system)를 위협하는 최종적인 근원으로 “자본주의 가부장제적 세계체제”를 지목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남성중심적인 사회·경제체제 때문이라는 것.
바로 이런 환원주의적인 전략 때문에 에코페미니즘은 학문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사회운동의 강령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 해방의 실천적 강령인 한, ‘에코페미니스트 숫자만큼의 에코페미니즘이 있다’고 할만큼 다양한 관점으로 나타난다. 발 플럼우드는 이론의 내용과 성격에 근거해, 문화적-에코페미니즘/사회적 에코페미니즘으로 구분하고, 엘리자베스 켈러쎄르는 이를 본질주의(문화적-에코페미니즘)와 구성주의(사회적/사회주의적-에코페미니즘)로, 또 이네스트라 킹은 동일한 이론적 구도 하에 급진적-에코페미니즘/사회적-에코페미니즘으로 구분한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가운데 90년대 중반부터 사회운동의 한 유형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에코페미니즘은 여러 사람이 함께 집필한 책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1995)’에서 그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적 전개를 개괄하고, 캐롤린 머천트 등 초기 여성 생태사상가들의 사유에 기초해 여성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등 다른 사회변혁운동 이론과 비교하는데 그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에코페미니즘’은 두 사람(반다나 시바/마리아 미스)이 집필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모노그라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선명하게 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 여성적 관점이 있다’는 주장에 그치지 아니하고, 가능한 사례들과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강령적 호소는 아니다. 저자들은 에코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지금까지의 페미니즘 이론을 비판하고, 여성의 시각에서 개발 대신에 생존(자급)의 관점을 옹호하고, 여성=다양성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생명공학 기술을 비판하고, 주부 중심의 소비자해방을 통한 기본적 욕구 충족을 위한 대안을 주장한다. 저자들은 새로운 비전으로 자급적 관점을 사례 중심으로 제시한다. 결론에서 저자들은 자급적 관점의 특징을 10가지 테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생태계 위기를 포함해 현대의 모든 위기는 ‘여성’, ‘자연’, ‘제3세계’의 식민화에 기인하는 것이며, 오직 이런 토양 위에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명이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북친, 엘리슨 예거(Alison Jagger)나 자넷 빌의 비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가부장제적 세계체제’의 확대에 여성이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지 않더라도, 옮긴이가 생각하듯이, “에코페미니즘을 지구인들의 마지막 구명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에코페미니즘이 현대 페미니즘의 운동강령 수준을 넘어, 우리 시대의 주류 생태‘학’적 담론이 되려면 에코페미니즘 내부의 비일관성을 극복하고,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 등 근본생태주의의 다양한 목소리와 대결하기보다는 이들을 결합해 생태-사회‘이론’의 역동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내용적인 면에서 풍부하고, 많은 통찰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과 환경…’과 마찬가지로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운동가들을 위한 지침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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