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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 10년 걸쳐 완역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깊이읽기 : 10년 걸쳐 완역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 강신준 / 동아대·경제학부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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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9 14:44:36

1848년 유럽 전역에서 발발했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반동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파리에 있던 맑스는 추방령을 받고 런던으로 망명의 길에 오른다. 새로운 망명지 런던에서 맑스는 수년간 이 도서실의 열람실에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단골좌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경제학연구의 구상을 점차로 구체화시켜 나갔다.


1857년 이미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 자본주의에서 공황이 발발하자 이 공황이 혁명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쫓기며 맑스는 자신의 경제학연구 구상을 실천에 옮겨 집필에 착수했다. 1857년 8월 ‘서론’이 완성됐고 이후 1858년 5월까지 총 10개월에 걸쳐서 맑스의 경제학연구의 첫 번째 초고인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하 ‘요강’)이 완성됐다.


혁명에 대한 맑스의 열정이 온전히 담긴 이 책이 세기 반의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나라에서 번역됐다. 시류의 차이로 맑스의 열정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의 번역에는 명지대 김호균교수의 10년의 열정이 녹아들어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가 이미 몰락하고 혁명의 열정도 이제는 낡은 시대의 유물로만 취급되는 새로운 전환기에 하필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이 번역은 새삼스런 맑스의 현재성을 일깨운다.


우리나라에서 맑스가 공개적인 지위를 확보한 것은 1987년 ‘자본’ 제1권이 번역됨으로써였다. 실로 맑스가 ‘자본’ 제1권을 출간한 지 120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奸智일까, 그것은 공교롭게도 맑스가 평생 그들 편에 서고자 했던 노동자계급이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이해를 직접 대변하고자 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했다.


맑스 시대의 헤겔처럼 우리에게 맑스는그렇게 쉽게 시류에 흘려보내도 되는 가벼운 존재는 아니다. 맑스는 20세기동안 과학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고전적인 인물이며 실제로 유럽에서는 한 세기 이상 지속적으로 재해석되면서 지금의 유럽문명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5년도 못되는 기간은 이 위대한 과학자의 유산을 올바로 소화해내기에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던 것이다.


‘요강’은 잘 알려진 바대로 맑스의 경제학연구 구상에 따른 첫 번째 초고로서 출판을 위한 원고라기보다는 연구를 위한 노트에 해당한다. 이 연구노트를 기초로 맑스는 1858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제1분책의 출판용 원고를 집필해 출판하는데 이것이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이에 뒤이은 제2분책의 원고는 1861년 8월부터 1865년 7월 사이에 초고형태로 완성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출판된 형태로 만나고 있는 ‘자본’의 최종원고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요강’은 맑스의 주저작인 ‘자본’의 출발점을 이루는 저작인 셈이다.
대개 맑스를 둘러싼 쟁점의 상당부분은 맑스가 자신의 주저작인 ‘자본’을 완성된 형태로서 출판하지 못하고 미완성의 초고로만 남겨둔 데서 비롯되고 있다. 그래서 쟁점들은 맑스 이론 가운데 비어 있는 부분을 둘러싼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맑스가 이 비어있는 부분을 애초에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맑스의 이런 애초의 의도를 짐작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 바로 ‘요강’이다. ‘요강’이야말로 ‘자본’의 구상이 처음으로 개괄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요강’은 매우 유명한 ‘서론’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맑스는 자신의 경제학 연구의 주제와 방법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대상을 부르주아적 생산으로, 연구의 방법을 추상과 구체간의 교호적인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기에서 추상의 원리와 의미,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간의 연관을 설명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요강’연구를 둘러싸고 R. 로스돌스키에 의해 제기되는 방법론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요강’의 첫째 장은 ‘화폐’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중에 ‘정치경제학 비판’과 ‘자본’의 첫째 장이 ‘상품’으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맑스의 방법론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단서로 얘기되는 이 차이는 대개 ‘요강’이 ‘연구방법’에 의해 집필됐고 후자의 두 저작은 ‘서술방법’에 의해 집필됐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요강’에서는 맑스 경제학의 본질적 특징을 이루는 잉여가치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정식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윤, 지대, 이자 등의 특수형태와 독립된 순수한 형태의 잉여가치가 착취의 본질도 설명되고 있다.


‘요강’은 앞서 얘기한 대로 미완성된 형태로 남아있는 ‘자본’을 해석해내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글이다. 우리나라에서 맑스연구가 한 시류적인 연구에서 탈피해 고전적인 연구로 자리를 새롭게 잡아나가는데 있어서 ‘요강’의 번역은 새로운 불씨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숙제는 많다. 무엇보다도 ‘요강’연구의 전제가 되는 ‘자본’이 아직 깔끔한 번역본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MEW판(이론과 실천사)은 개역작업을 남겨두고 있으며 영어본(비봉출판사)은 영어의 언어적 한계 때문에 맑스의 논리적 연관을 올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 세기에 맑스가 대적했던 부르주아적 생산의 야만적 본성이 신자유주의의 망령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최근의 시류에서 ‘요강’이 ‘인간화’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새롭게 지펴 올리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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