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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읽기]『지구화의 길』과『허울뿐인 세계화』
[비교읽기]『지구화의 길』과『허울뿐인 세계화』
  • 교수신문
  • 승인 2000.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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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5 13:28:23
세계화, 수용과 거부의 이분법을 넘어서


박길성 / 고려대·사회학과

1990년대 서구에서 벌어진 가장 열띤 논쟁을 세계화(지구화)라고 지목하는데 다른 의견을 가진 학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격식과 품위을 갖춘 학술지나 대중잡지 치고 세계화를 다루지 않은 것도 드물다. 사실 근래에 들어 세계화라는 논제만큼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극단적인 편가름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화가 만들어낼 결과에 대한 예민한 관심이 빚어낸 현상이다.

세계화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서들은 이미 적지 않게 출간됐다. 일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 시대의 사회이론가나 시민운동가치고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을 무심하게 지나치거나, 이에 대한 대응을 고민해보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울리히 벡의 ‘지구화의 길’과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허울뿐인 세계화’가 눈에 띤다.

세계화 논의의 다양한 스펙트럼

세계화에 관한 논쟁의 핵심은 크게 보면 수용과 거부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세밀하고 꼼꼼한 독자라면 세계화가 그리 단순한 구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음을 알게 된다. 특히 지난 10여 년 남짓한 기간 사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진행에 따른 국제적인 차원의 불평등과 국내적인 사회해체의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점차 ‘세계화의 재구성’과 ‘세계화의 거부’로 방향타를 잡아가고 있다.

‘지구화의 길’에서 우리는 울리히 벡이 이미 출간한 몇 권의 저서, 이를테면 ‘위험사회’나 ‘정치적인 것의 재발견’ 등의 논의를 바탕으로 세계화 담론의 재구성을 완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용감한 신세계’라 불리는 지금의 세계 상황에서 이미 성립된 세계사회와 세계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국가개입과 국가 규제의 최소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나 경제적 세계화로 경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역시 세계화의 이해는 어떤 단일한 과정이나 단일한 실체로 동질화, 획일화된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강변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의 논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시민사회적, 생태적, 개인적 층위와 같은 차원이 존재하며, 각각의 차원에서 국민국가적 한계를 넘어서고 가로지르면서 초국가적 사회관계들이 성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울리히 벡은 “세계화란 단순히 단방향적이거나 일차원적인 탈국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특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양방향적인 변증법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지역적인 요소 역시 새롭게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지역화 또한 강화되는 세계지역화가 세계화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세계화는 지구상의 다양한 지역적, 국민적 특성들을 동질화하거나 획일화시키면서 정치의 종언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사회의 다양성을 부각시키면서 새로운 의미에서 정치 행위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 벡의 견해다.

한편 노르베리-호지는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지역성의 파괴를 현장보고서의 생생함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일관된 주장은 작고 지역적인 것들의 희생 위에서 크고 세계적인 것들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역시장과 작은 상점들이 세계화 경제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문화와 농업의 다양성은 세계화의 논리에 의한 단일경작에 의해 무너지고, 자립은 전세계적인 의존에 패배하고 있다. 공공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인프라 프로젝트들은 거대기업들의 요구에만 부응하고 작은 경쟁자들을 무너뜨린다. 현대의 교육은 문화 및 생태학적 배경을 무시한다. 다국적기업이 게임의 규칙을 결정한다.

벡과 노르베리-호지 사이에는 세계화의 재구성과 세계화의 거부라는 논지의 수준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흥미롭게도 세계화에 대한 응답으로서 비슷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대안’과 보다 작고 보다 지역적인 것으로부터 희망을 찾는 ‘풀뿌리 공동체’가 그것이다. 벡이 제안한 새로운 교육정책의 구상, 소비의 정치화, 시민노동제의 도입, 공중기업가와 자가노동자의 산출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안은 지역 공동체를 주축으로 한 변화를 모색하는 노르베리-호지의 시도와 상당한 유사한 점을 보인다.

‘아래로부터의 대안’ 모색하는 벡과 호지

사실 세계화의 요구에도 긍정적이고 정당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발전과 사회인식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진보적인 일면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세계화는 자급자족적 혹은 민족문화주의적인 대응을 통해 퇴치되어야 할 괴물이 아니다. 역사의 발전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사실이다. 이러하기에 세계화에 대한 거부보다는 세계화 본유의 문제의식이었던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차이의 존중이 필요함을 부단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인식을 하나의 단일 공간 위에 펼쳐 놓으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공존의 논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적인 것(the global)과 지역적인 것(the local)은 상대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계화의 생명력은 지구적인 것과 국지적인 것과의 조화에 있는 만큼, 지구적인 것의 일방성이나 국지적인 것의 특수성 어느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다른 사회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데서 비롯한다는 주장을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울리히 벡의 주장은 시대 상황에 대한 적실한 간파이다. 이제 다양성과 공존의 논리를 바탕으로 다름을 존중하고 같음을 모색하는 성찰적인 세계화를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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