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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닌 ‘政權’에 초점 맞춰
‘사회’ 아닌 ‘政權’에 초점 맞춰
  • 김봉중 / 전남대·미국사
  • 승인 2006.11.15 00: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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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이다보면 군데군데 검은색 매직으로 지워진 부분을 대할 때가 있다. 특히 한국관련 문서에서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1979년 청와대에서 있었던 카터-박정희 정상회담 녹취록에서 박정희의 발언이 지워진 부분이 있다. 사서에게 물어보니, 그런 부분을 공개하려면 한국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미관계를 연구할 때 미국측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측 생각이나 이야기가 사라졌거나 충분치 않아서 어려울 때가 많다.

이런 점에서 박태균 교수가 ‘우방과 제국’을 통해서 미국 정책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와 한국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는 균형 잡힌 한미관계사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필자의 서평에 대한 박 교수의 반론을 읽으면서 ‘우방과 제국’의 목적이나 의도, 그리고 그 학문적 가치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미관계를 하나의 잣대나 모형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진화된 점을 부각시킨 것은 실증적인 작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려는 역사가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써, 그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필자가 서평에서 지적했던 시각과 결론의 간극이나 불협화음에 대한 지적을 박 교수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저자의 시각과 결론,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조응하는 서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반론에서 “문제의식과 결론은 초지일관 한국 사회 내적인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정권과 지도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베트남 파병 부분에서 ‘국민들은’ ‘한국인들은’ ‘우리는’ 용어를 사용했지만(323쪽) 본문에서는 주로 한국 정부, 특히 박정희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 하나의 예이다. 책의 결론 “평온한 날이 없었던 한미관계”에서도 한미관계에서 유일하게 마찰 없이 순탄했던 시기를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5년을 전후한 시기와 신군부 집권 직후인 1980년대초”(367쪽)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자칫 독재정권 시기를 한미관계의 ‘황금기’로 오해할 수 있다. 만약 저자의 진의가 그것이 아니라면 본문에서는 박정희와 케네디-존슨 행정부의 갈등을 충분히 기술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은 본문 서술과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는 시각이다. 관계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한미관계도 한국의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술방향이나 결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어느 쪽의 시각이 어느 편의 시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한미관계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민감한 반향을 고려해서 연구자들은 단어나 용어 하나의 선택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전체적, 균형적, 통합적으로 과거를 보는 명징한 사유가 필요하다. 결론부분에서 “미국의 무리한 개입과 한국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을 강조했는데 전체적 서술은 미국의 무리한 개입보다는 5·16 쿠데타 등 주요 격변기에 오히려 ‘두고 보자(wait-and-see)’는 식의 수동적인 자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울러, ‘무리한’이란 단어를 선택한 근거, 즉 그 개념이나 정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또한 과거 경험의 현실 정합성을 지적할 때는 과거와 현실 사이의 객관적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며 그것에 대한 초연한 응시가 필요하다. 논리가 정연하고 호소력이 있다면 독자들은 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고, 그 속에서 한미관계의 현안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방과 제국’에서 박 교수의 한국과 미국 양자에 대한 대단한 너비의 식견에도 불구하고 결론이나 그 시사점이 필요이상으로 단호하고 선언적이기에 오히려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역사에서 시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보는 역사가의 시선이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 내적인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는 하나 전체적으로 정권에 그 시선이 머물러 있다. 한미관계의 연구가 진정으로 미래지향적이 되기 위해서는 암울하고 척박했던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도 경제나 민주주의와 인권 등 여러 면에서 오늘을 만들었던 한국인의 생각, 의지, 삶을 역사 속에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관계를 포함한 우리의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과거에 대한 냉철한 시선 못지않게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박 교수가 반론에서 “결국 ‘우방과 제국’을 통해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라고 한 점은 다소 부정적인 명제라고 본다. 한미관계의 책임소재, 과연 그것에 대한 명석판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뭔가 참신하고 긍정적인 다른 명제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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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2006-11-15 15:33:42
주례 서평이 아닌 정말 공감가는 서평이자 재반박문이다.
김봉중 교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