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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 교수신문·KBS 추적60분 공동 학계 자기논문 표절조사
특별취재 : 교수신문·KBS 추적60분 공동 학계 자기논문 표절조사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11.11 13: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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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절 기준 너무 ‘제각각’... 출처명기에 관한 약속 필요

교수신문과 KBS 추적60분은 학생수가 1만명 이상인 수도권 소재 대학 22곳 가운데 무작위추출방식을 통해 대학 및 학과 3곳을 선정, 소속 학과 교수들의 논문을 검토했다. 또 22개 대학 중 다시 무작위방식으로 10곳을 선정, 각 대학 총장의 논문을 살펴봤다. 무작위추출방식에 따라 선정된 검증대상은 S대 역사계열학과, H대 체육계열학과, K대 경영계열학과 교수들과 D대 등 10개 대학의 총장을 포함하여 총 35명의 논문이었다. 이 가운데 검증이 어려운 의학 전공 총장의 논문은 검토대상에서 제외했다.

교수신문과 KBS 추적60분의 무작위 추출을 통한 논문조사결과 44%에 달하는 교수 및 총장이 자기표절을 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 학생수가 1만명 이상인 수도권 소재 대학 22곳 가운데 무작위추출방식을 통해 총 34인의 논문을 검토했다.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23일까지 약 3백50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34명의 교수 및 총장 가운데 무려 15명이 자기표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5명의 대상자는 모두 출처를 명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전 연구실적을 중복활용했다.

지금까지 학계는 자기표절 및 중복 게재가 일부 교수들의 경우에만 한정된다고 언급해 왔으나, 이번 실사를 통해 자기표절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으며 연구물의 중복사용에 관한 학계의 합의가 부재한 상황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비학술지간 논문 중복게재, 국내논문을 1백% 번역해 해외 학술지에 게재한 경우, 논문을 그대로 저서에 삽입하는 경우, 박사학위논문을 장별로 나누어 발표하는 경우 등 논란의 대상이 되는 유형은 결과에서 제외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 제목과 내용이 동일한 경우 △ 내용은 동일하지만 제목이 다른 경우 등 1백% 복제형 논문도 발견됐으며, △ 연구 방법과 대상이 동일하고 서술내용도 같지만, 몇 가지 데이터만 수정해 업적을 부풀리는 사례도 포착됐다.

또한 △ 저서의 일부를 그대로 복제해 학술지 논문으로 발표한 경우 △ 핵심 내용이 50% 동일한 경우 △ 이전 논문의 일부 장을 축약 복제한 경우 등 지금까지 교수신문이 지적해온 자기복제의 유형도 계속 발견됐다.

조사하고 전문가 검토를 거치는 과정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도 포착됐다. ‘○○과학’이라는 학술지에 연달아 3편의 논문을 게재한 H대 L 교수는 ‘○○○○ 동작의 ○○○○에 관한 연구’를 게재하고, 이어 그 다음 페이지부터 ‘~ 동작의 ○○ 반력에 관한 연구’, ‘○○ ~ ○○ 동작의 ○○ 반력에 관한 연구’를 연달아 게재했다. 한 권의 학술지에 3편의 논문을 게재했지만, 이 세 논문은 동일한 방법론과 동일한 문장구조를 포함하고 있으며 데이터 수치만 달리했다.

▲ 위의 세 논문은 '○○과학' 24호(2000년) 1쪽에서 32쪽까지 연달아 실려있으며, 주황색으로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고 문장구조는 동일하다.

이 논문을 검토한 한 전문가는 “학술적 연구 방법론의 질적 차원에서 마땅히 한 논문에서 동시에 수행되어야 했다”고 전했다. ‘A·B·C에 관한 연구’라고 하면 될 것을 ‘A에 관한 연구’, ‘B에 관한 연구’, ‘C에 관한 연구’로 쪼개어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혐의가 있다는 것. 그는 “그런 논문 세 편을 하나의 학술지에 동시에 게재한 점도 특이하다”고 전했다.

최근 교수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10월2일자 414호 ‘기획연재-잘못된 관행, 표절의 생태학 ③ 어디까지가 자기복제·중복투고인가’), 67명의 전현직 학회 편집위원들은 ‘학술지에 실린 자기 논문을 학술지가 아닌 잡지에 기고한 경우’ 55.2%가 자기표절이라고 응답했고, 41.8%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해, 자기표절과 관련한 학계의 합의점을 찾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조사를 통해 자기표절에 대한 기준과 인식이 제각기라는 점을 학계의 반응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표절 혐의가 발견된 S대 L 교수는 “대중들에게 연구성과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중지에 게재하는 것은 중복이 용인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더해 H대의 L 교수는 “내가 쓴 책에 있는 것은 얼마든지 베껴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광영 중앙대 교수(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윤리정책위원장)는 “이전 연구물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책을 발간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를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제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신준용 고려대 교수(전 한국회계학회장)는 “일단 발표가 되면 자기가 썼다 하더라도 공적자산”이라며 “내 것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베껴 써도 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성택 고려대 교수(학술진흥재단 인문학지원 단장)는 “돈을 받았든 안 받았든, 학술지 논문에서 비학술지 논문으로 가든 그 반대로 가든, 한글에서 영어로 가든 영어에서 한글로 가든, 논문을 중복사용할 경우 그 출처를 밝히자는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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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 2008-04-23 14:01:02
어떻게 해서든 자기 변명하기 일쑤다. 자기표절이든 그냥 표절이든 어쨌든 정직한 댓가를 받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거다. 등록금은 미국 수준으로 올려대고, 연구는 미국 교수들 수준을 못 따라가는 우리나라 교수들, 반성좀 합시다. 그런 이야기들 계속 안하면 교수신문도 결국 보수 꼴통들의 논리를 대변하는 그런 늙은 신문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미 그런지도 모르지만.
최장순 기자님, 계속 취재해서 교수들이 연구 윤리 의식에 대한 의식이 생기게끔 해주세요. 하긴 교수들이 기자 말을 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