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9:20 (금)
[대학정론] 자연사박물관의 행방
[대학정론] 자연사박물관의 행방
  • 논설위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29 10:06:21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서 박물관을 들 수 있다. 이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낯뜨거운 수준이다.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군, 런던의 자연사박물관, 뮌헨의 독일박물관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에도 세계적인 박물관들이 있다. 한국에는 국립과학관이 있지 않으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전시관이지 과학박물관이라 하기는 어렵다. 몇몇 대학에 자연사박물관이 있지만 세계의 공인을 받은 자연사박물관은 하나도 없다. 일본에 1백50개, 방글라데시, 우간다에도 10여개의 자연사박물관이 있는데 말이다.

‘자연사박물관 없는 나라’를 면해 보자고 26개 학회, 연구소들이 일어나 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운동을 벌인 지 10년이 넘었다. 다행히 1995년 문민정부가 이에 호응해 2020년 설립 목표로 문화체육부가 용역사업을 진행했지만, 최근 3년동안 예산이 끊겨 설립 준비작업은 중단됐다.

자연사박물관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생물, 지질, 광물 등 한국의 자연환경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여기서는 천연보호지구 설정, 멸종생물의 파악과 회복, 유전자원으로서의 야생종의 유지, 환경변화를 탐지하기 위한 기준자료의 확보 등 다각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자연사박물관의 교육기능이다. 자연사박물관은 각급 학교 과학교육의 현장으로 없어서는 안될 곳이다. 또한 대학과의 공동연구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과학의 국민이해를 높이는 핵심적인 몫을 맡아야 한다.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의 결과로 지구의 자연환경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자연을 살리기 위해 1992년 체결된 생물다양성협약은 가입국들에게 생태계에 대한 명세조사와 감시를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한국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표본, 정보, 인력,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한 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온대기후에 속해 비교적 다양한 생물종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생물종의 3분의1이 겨우 보고된 한심한 상태이다. 그 상당수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호랑이, 여우, 뜸부기가 이미 멸종됐고 반달가슴곰, 미선나무는 절멸 직전이다. 식용작물의 4분의3이 1985년 이후 10년 사이에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다. 생물종의 표본만 해도 19세기 이후 선진국 학자들이 대부분 가져갔고 북한의 경우는 동유럽에 가 있어 표본연구를 하려면 한국학자들이 외국을 찾아다녀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을 짓고 있는 문화관광부 소관이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생물자원보존관과 과학기술부가 공들여 온 서울과학관 확장계획도 벽에 부딪쳐 있다. 정부는 교육부를 포함한 부처간 조정으로 중복을 피한 자연사박물관의 설립계획을 확정해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이 없음은 명백하지만 시장논리를 넘어선 국가백년대계의 추진이 절실한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