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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신세계… 방관할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신세계… 방관할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
  • 최유란
  • 승인 2024.03.25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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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뉴럴 링크』(동아시아 | 272쪽) 쓴 임창환 한양대 교수

막연한 두려움으로

디스토피아를 논하기보다는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책을 계기로 철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도

BCI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태권도, 복싱 같은 무술을 단숨에 마스터해서 ‘최고수’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의 뇌가 컴퓨터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뇌공학자인 임창환 한양대 교수(바이오메디컬공학과·사진)가 지난 1월 펴낸 『뉴럴 링크』는 이처럼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BCI 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정리한 책이다.

BCI의 선두 주자는 ‘괴짜 천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2017년 뇌공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설립한 머스크는 지난 1월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으며, 지난달에는 해당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스크린에서 마우스를 조작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0일(현지 시각)에는 칩을 이식받은 사지 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온라인 체스 게임을 하는 영상을 공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장의 목표는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생각만으로도 각종 기기를 제어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기술이 확장되면 「매트릭스」의 현실화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2007년 국내 최초로 BCI를 연구하기 시작한 임창환 교수는 이번 책에서 BCI의 기본 원리는 물론 마음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마인드 업로딩’, 꿈을 저장하는 ‘드림 레코더’, 생각만으로 타이핑하는 ‘마음 타자기’, 뇌를 수정하는 ‘뉴로피드백’, 뇌의 일부를 대체하는 ‘전자두뇌’ 등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BCI가 바꿀 미래상을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BCI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누군가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반면, 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공포를 숨기지 못한다. 과연 우리가 BCI와 함께 마주할 ‘진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또 그 미래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지난 5일 한양대에서 임창환 교수를 만났다.

임창환 한양대 교수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이 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연구원과 연세대 의공학 부 조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한양대 공과대학 바 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양대 뇌공학 연구센터장, 대한뇌파신경생리학회장 등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공학한림원 미래 100대 기술 주역으로 선 정됐으며, 2007년 대한의용생체공학회 젊은의공학자상, 2020년 대한뇌기능매핑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는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바이오닉맨』등이 있다. 사진=최유란

 

생각만으로 통하는

기술 또는 ‘기적’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이 앓았던 ‘루게릭병’은 운동 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퇴행성 뇌 질환으로 증상이 심해지면 전신 근육이 마비된다. 루게릭병 환자가 마지막까지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는 눈이다. 하지만 증상이 심각해지면 이마저도 어려워져 의사소통 불가 상태가 된다. 의식은 그대로인데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떤 심정일까. BCI는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기적과도 같은 기술이 될 수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마음 타자기’ 기술이다. 뇌파를 이용해서 생각만으로 타이핑할 수 있는 BCI 기술이다. 임 교수가 연구 중인 ‘스피치 BCI’도 있다. 머릿속으로 말을 떠올리면 실제 음성으로 바꾸어주는 기술이다. 임 교수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BCI 기술 중 하나”라며 “4년 뒤 기술 개발이 목표”라고 말했다.

BCI가 선사할 수 있는 기적은 의사소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손과 발의 움직임을 잃은 이들이 뇌파로 로봇 팔다리나 주변 사물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치매’를 비롯한 각종 뇌 질환을 치료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바이오메디컬공학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학문”이라며 “가까운 미래에 BCI는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BC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CI의 시장성·확장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트랜스휴먼 ‘사이보그화’ 우려

하지만 모든 기술에는 명과 암이 있다. 특히 BCI는 최근 인공지능(AI) 발전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인류의 트랜스휴먼, 즉 사이보그화다.

실제로 BCI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의 ‘인위적인 진화’도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수많은 윤리적·사회적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타고난 지능이나 후천적 노력과 관계없이 뇌에 삽입한 칩이나 전자두뇌 성능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세상은 과연 정상적일까. 이러한 기술이 빈부 격차에 따라 차등 적용되거나 전쟁이나 범죄에 활용되면 어떻게 될까.

『뉴럴 링크』에도 이러한 미래 예측 시나리오가 서술돼 있다. 하지만 임 교수는 “현재 뇌공학 기술 수준을 놓고 보면 과장된 면이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기술 개발 자체를 막기보다는 기술 개발 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하다”라며 “BCI가 단순히 생활의 편의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기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AI와 맞서 싸울 유일한 방법이 BCI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BCI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견해다. 임 교수도 스티븐 호킹이 남긴 비슷한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지능에 기여하도록 뇌와 컴퓨터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기술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어떤 예측이 맞아떨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섣불리 기대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임 교수는 말한다. 그가 대중을 대상으로 BCI를 소개하는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임 교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디스토피아를 논하기보다는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이번 책을 계기로 철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도 BCI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미래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

BCI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널리 알려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외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이 투자한 스타트업 ‘싱크론’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기업 및 대학 연구팀이 BC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 기술 종속 상황에 처해 ‘미래의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 한국도 독자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주소는 어떨까. 임 교수는 “비침습형 BCI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침습형 BCI는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침습형은 뇌 표면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 비침습형은 두피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침습형은 수술이 필요하지만 정밀 제어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낮지만 안전하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뉴럴링크’, ‘싱크론’ 등에서 연구 중인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방식은 침습형이다. 임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는 침습형 BCI 연구에 관한 규정 자체가 없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불가한 상황이라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최근 이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침습형 BCI는 이미 기술 격차가 많이 나는 상황이라 서두를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나, 자금적으로나 뒤처진 상황을 뒤집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임 교수는 한국 전체가 ‘원 팀’이 되어 공동으로 연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머스크의 ‘뉴럴링크’의 경우 거대 자본을 투입해 모든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놓고 연구를 하기 때문에 속도도 빠르고 독자 개발도 가능하다”라며 “그에 대항하려면 국내 연구팀이 서로 경쟁하며 역량을 분산하기보다는 항공우주 분야처럼 한국 전체가 하나의 컨소시엄 형태로 똘똘 뭉쳐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임 교수는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기업가들이 투자한다는 건 BCI의 시장성과 확장성이 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잠재력이 충분한 분야이므로 각계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한국이 BCI를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최유란 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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