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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의 '다양성' 복원···시각과 결론 '불협화음'
한미관계의 '다양성' 복원···시각과 결론 '불협화음'
  • 김봉중 전남대
  • 승인 2006.11.05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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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박태균 지음, 창비, 438쪽)

얼마 전 미국 CNN 방송은 한미 안보협의회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한 후 가진 한미 국방장관 공동 기자회견을 생중계했다. 한국 기자들은 주로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해 질문을 했고, 미국 기자들의 질문은 내 기억에 한국 관련 내용은 하나도 없이 전적으로 이라크 문제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역시 한국 문제보다는 이라크 문제에 더 많이 할애했고, 답변하는 내용이나 분위기에서 럼스펠드의 머리 속에는 한국보다는 이라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황당한 기자회견이었다. 한국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날 아침 우리나라와 미국의 언론 보도를 비교해 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이라크, 한국은 전작권이 헤드라인이었다.

누구도 한미 양국에 대한 100% 이해를 전제할 수 없기에 한미관계는 결국 어느 편의 창으로 보느냐에 따라 서술의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태균 교수가 한국현대사 연구자로서는 미국 정치의 흐름을 염두에 두면서 한미관계를 보려고 노력한 점은 의미 있는 일이며 그 학문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저자는 8·15에서 5·18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미국외교사의 기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FRUS’(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을 중심으로 한미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럼으로써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효과’를 얻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실수를 거듭한 우리의 외교적 불찰을 피하기 위한 역사적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인 듯 하다.

  하지만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는 그 학문적 가치와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아쉬움이 남아 있다.
“미국의 무리한 개입과 한국정부의 부적절한 대응”(371쪽)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 한미관계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또한 해방이후 근 반세기의 한미관계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며 저자가 내린 결론은 “아쉽게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한미관계의 성격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377쪽) 그러나 그 시각과 결론의 간극이 너무나 크고 모호하다. 어쩌면 상호 이율배반적이다.

한미관계의 현안들, 즉 FTA, 전작권, 북핵문제 등에 대한 혜안과 해법을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제공해야 한다는 역사가로서의 과도한 책무와 강박감이 저자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각과 결론의 불협화음을 자아냈고, “한미관계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를 얻고자(377쪽)” 하려는 저자의 본래 의도가 훼손되고 말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자유당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이 낙선하고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된 부분에서 느닷없이 “마치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한국 내 미국의 현지기관들이 얼마나 당황해했을까를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예”라고 저적했고(136쪽), 5·16 쿠데타의 미국 개입설을 다루면서, “미국이 헬기 몇 대로 빠나마의 노리에가를 체포하는 데는 성공해놓고, 막대한 화력을 퍼붓고서도 지금까지 이라크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덧붙였고(223쪽), 한국의 야당과 민주화세력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시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1990년대 이후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권을 잡은 민주화운동세력들이 왜 스스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온 독재정부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일까?”(361쪽) 라는 시사성 언급을 하는 등 과거와 현재의 불필요한 상관관계를 제시했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추측성 예단으로 논지의 부정확과 비약을 드러내고 있다.

톨레도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한미관계, 1945-1979’로 박사를 받았다. ‘카우보이들의 외교사’,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 등을 펴냈다.    
이승만에서 박정희를 거쳐 80년대 군사독재의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을 바라보는 가슴 아픈 작업이지만 그것은 더 나은 우리의 미래와 한미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자양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5·16 쿠데타 성공의 “궁극적인 책임은 이를 지켜보기만 한 국민들에게 있는 것”(226쪽) 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따가운 교훈이다. 하지만 한국의 야당이나 우리의 국민성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라고 전제했지만 책의 곳곳에서 직·간접적으로 비춰진 우리 자화상에 대한 부정적이면서 다소 패배주의적인 투영은 마뜩찮다. 한미관계의 연구가 진정으로 미래지향적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냉철한 비판정신과 함께 엄혹하고 척박했던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도 지금의 경제나 민주주의 신화를 창출한 우리의(정권 차원이 아닌 우리 국민의) 역동성과 자신감을 역사 속에서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CNN 방송, 다시 생각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생중계를 할 정도로 우리의 존재와 위상이 커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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