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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주변국들의 '모순된' 공조
동북아 주변국들의 '모순된' 공조
  • 박홍영 충북대
  • 승인 2006.11.05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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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핵실험과 아베정부를 보는 '역사의 눈'
박홍영 / 충북대·정치경제학

아베정부를 보는 ‘역사’의 눈은 무엇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여기서 말하는 ‘역사’의 눈은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原爆) 경험이고 한국의 한국전쟁 경험이다. ‘역사’의 눈은 일본에게 비핵을 통한 동북아평화를 요구하며, 한국에게는 비핵지대화를 포함해 군축을 통한 한반도 평화를 요구한다고 봐도 크게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도 한국도 이러한 ‘역사’의 눈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그럴까 하는 문제를 필자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나 한국전쟁은 당사국에게는 물론 인류에게도 치명적인 사건이었고 직접 경험자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서도 살아 있는 역사이다. 따라서 2006년 10월 9일의 북한 핵실험은 일본에게 원폭의 악몽을, 한국에게는 남침의 악몽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다보니 양국간의 현안이었던 교과서문제, 야스쿠니 참배문제, 독도문제 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한일관계가 북핵문제와 미사일 문제, 미국의 세계전략 문제 등에 연동되면서 한일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한일간 현안이며 해결과제였던 문제는 그 자리를 생존의 문제에 내 주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도 ‘역사’의 눈을 조명해 볼 필요는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일의 생존문제를 위협하는 불안정한 상황연출이었다. 이 상황을 차단하는 것이 한일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였음을 ‘역사’의 눈은 확인해 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전세대 혹은 전후세대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전전세대가 주류를 이룬 시대에 생존의 문제는 가장 절박한 문제였다. 그래서 심지어 자유, 인권, 정의라는 민주주의 덕목보다 생존문제가 우선시되어 국가정책이 결정되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 덕목에 손상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전전세대가 주류를 이룬 시대에 생존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생존문제는 전전세대 혹은 전후세대를 가리지 않고 절박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전후세대는 생존문제를 절박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의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역사’의 눈감기는 모두 같은 차원의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베정부는 원폭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을 원폭가능의 국가를 만드는 것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이 노선에 일본정치인과 국민은 그간 대체로 망설이고 있었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망설이던 일본정치인과 국민에게 분명한 좌표를 정해 준 것 같다. ‘역사’의 눈을 뜨고 가려던 일본은 이제 ‘역사’의 눈을 감고 가려한다. 한일과거사 및 원폭의 악몽에 대해서도 눈감으려 한다. 아마도 일본국민에게 아베정부는 원폭의 악몽을 지우기 위해 북한의 핵에 대응하는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 종착점이 어디인지 ‘역사’는 말해준다.

북한의 핵무장은 동북아지역에서 군비경쟁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은 핵 국가로 인정받아 국제사회에서 생존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일본은 이에 대한 대응능력이 있기에 이를 계기로 오히려 함께 핵 국가 혹은 국제사회 중추국가가 되려 한다. 그러면 동북아에서 낙오자는 한국이다. 북한은 한국을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른바 북미일 등의 레벨에서 한국을 소외시키려 한다. 이 길은 한국에게 반통일이요 반평화의 길이다. 한국정부는 이 가능성을 모르고 북한을 대해 왔는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한국이 새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민족’이 아닌 ‘국가’의 차원에서 북한을 대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핵 국가 등 강성국가의 길을 통한 동북아평화를 만들려 한다. 이는 ‘역사’의 눈을 외면하는 길이지만 북한과 한국이 이를 돕고 있다. 원폭피해국가로서 원폭 가능의 국가가 되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주변국이 도와주니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한국은 군축을 통한 한반도 평화 나아가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야 하거늘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만으로 오히려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결과를 불렀다. 한국은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미국산 무기도입, 민족공조의 이름으로 북한의 강성화를 부추겼다. 일본도 한국도 ‘역사’의 눈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차이가 있다면 일본은 과거의 악몽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역사’의 눈감기이다. 한국은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낙관에 기초한 ‘역사’의 눈감기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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