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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이고 묶여’ 정겨운 공간 …‘이야기 보따리’ 한가득
‘섞이고 묶여’ 정겨운 공간 …‘이야기 보따리’ 한가득
  • 조극래 대구가톨릭대
  • 승인 2006.11.0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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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현대 건축_(12) 경북 문경 점촌중학교 ‘보따리 별관’

경북 문경시 모전동에 위치한 점촌중학교가 최근 증축한 별관의 이름은 ‘보따리’다. 교실과 중정, 정원공간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포장하듯이 지었기 때문이다. 맑은 날에는 야외수업이 가능하게 배려했으며 바람부는 날에는 정원에 앉아 시를 생각할 수 있다. 옛날의 따뜻했던 학교풍경이 떠오른다.


설계 : 최춘웅, 스테이시 자코비니(aspace)+장광엽(다인건축)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규모 : 지상 3층
외부마감 : 벽돌치장쌓기, 인조석재, 방부목
내부마감 : 세라믹타일, 화강석, 경량칸막이
설계기간 : 2004.5~2005.1
공사시간 : 2005.6~2006.3

점촌중학교 ‘보따리 별관’은 올해 3월 완공된 건물로 1층과 2층에는 음악실과 과학실 등 특별 교실이 있고, 3층에는 미디어도서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내부 정원(위쪽의 (1), 아래쪽의 (1)은 내부모습), 중정(2) 등 빈 공간을 이리저리 서로 섞어 ‘보따리’ 감싸듯이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았다. 3층 미디어도서실은 본관 건물과 브리지(3)를 통해 연결돼 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최춘웅은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빈 공간들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수업이나 학습공간을 제공해 주고, 교실 사이의 소음막이 되기도 하며, 산과 계곡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이용해 건물 내부의 온도와 환기를 조절하는 통풍로가 되기도 한다”(건축전문지 ‘vmspace’)고 말한다.

새벽에 집을 나서 다음날 새벽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만큼 현재 우리 학생들의 교육현실은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환경 특히, 학생들의 정서와 학생들의 자유로움을 배려한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물론 기능적으로 편리하고 학습하기에 효율적인 공간을 제공해야한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수시로 밖으로 나가 뛰어 놀 수 있고, 함께 모여 재잘거리기도 하고, 맑은 날에는 야외수업의 설렘을 경험할 수 있는 열린 학습공간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의 학교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학교건물이 있다. 자그마한 시골도시 문경에 세워진 점촌중학교의 별관 건물이 바로 그것인데, 건축가가 ‘보따리 별관’이라 이름 붙인 이 건물은 음악실을 비롯한 특별교실과 미디어 도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텅 빈 운동장 가운데 자리 잡은 보따리 별관은 단순한 조형적 언어를 사용하여 건축적 요소들이 간소화되어 있다. 단순한 입방체의 외부를 따라 수직의 창이 배열된 건물은 외부의 환경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분명한 경계를 짓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며, 모더니즘에 근거한 합목적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하는 原型의 유형적(typological) 건축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수직적 구성의 창이 주는 이 건물의 경계는 건물이 놓여진 다소 황량한 운동장과의 관계에서 교실 내부에 있는 학생들의 눈길을 외부로 쉽게 보내지 않게 하는 동시에 외부환경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려는 의도이다.

건물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경계에서 전해지는 느낌과는 달리 건물 내부공간의 구성방법은 건축가가 지은 ‘보따리 별관’이라는 이름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마치 보따리 짐을 싸듯이 교실과 중정 그리고 정원공간을 한 덩어리로 묶어 그 경계가 이리저리 섞여지도록 포장하는 것이다.

보따리로 물건들을 싸 본 사람들은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처음 쌀 때와는 달리 각각의 물건들이 이리저리 섞이고 묶여져 있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건 서로서로가 적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보따리 별관은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벽체의 보따리에 각각의 공간과 볼륨들이 수평으로 때론 수직으로 잘 섞여 있는 것이다. 낮고 어두운 현관을 통해서 건물로 들어서면 예상과는 달리, 시야가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지도록 공간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층의 교실들 사이사이에는 하늘과 통하는 중정들이 잘 섞여 놓여 있어 햇볕이 머물고 바람이 통하는 역할을 한다. 3층의 도서실은 평면상에서 바로 직접 외부로 나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음과 동시에 내부의 중정과 시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깊이감을 주고 있다.


이처럼 보따리 별관의 내부는 정해진 쓰임새를 갖고 있는 각 실의 내부공간과 여기저기 흩어져 외부로 열려 있는 비워진 공간들,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연결공간들이 수직과 수평으로 섞여서 각 자가 그 자리를 찾아가도록 갈색의 벽돌 보따리에 정겹게 싸여 있는 것이다.

하늘을 보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 수 있는 중정이 있고 책을 덮고 훌쩍 나와 바람을 맞으며 시를 생각할 수 있는 정원이 있는 별관은 비록 조금은 낯설고 약간은 무덤덤한 보따리에 쌓여있지만 그 속에는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풍부한 이야기보따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세월이 갈수록 정이 들고 한편으로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묻어나는 반가운 공간이 될 것이다.

조극래 / 대구가톨릭대·건축학
필자는 미국 미시간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EYP Architects Washington D.C 등에서 실무작업을 했고, 주요 참여 작품으로 몽고메리 대학의 마스터플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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