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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의 인식변천을 추적하다
‘民’의 인식변천을 추적하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11.02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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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民’에서 ‘民族’으로』(이석규 편, 선인, 233쪽, 2006)

“민족=네이션을 근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 한, 전근대사에서 민족이 자리할 곳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사에서 신분적 차별을 뛰어넘는 공동체 의식, 공동체 문화의 성장은 찾을 수 없는 것인가.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의 성장과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당시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의 편저자인 이석규 한앙대 교수를 중심으로 모인 5명의 학자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이다. 이들은 민족의 발생을 근대 이후로 선긋는 일방적 규정을 거부하고 오랜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공통의 역사를 경험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해갔으며, 제국주의의 침략을 거치면서는 그것이 어떻게 민족적 결집으로 나타났는지를 해명하기로 했다.

개념적 속박에서 탈피해서 역사현실을 재구성해보자는 의미있는 시도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여말선초 신흥유신의 민에 대한 인식’(이석규), ‘조선중기 사림의 민에 대한 인식’(김창현), ‘북학파의 민에 대한 인식’(김도환), ‘대한제국 말기 의병지도층의 국민 인식’(김순덕), ‘식민지시기 부르주아 민족주의계열의 민족 인식’(김광운) 등 총 5편의 논문을 통해 민에서 민족으로의 변화를 살피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民’이 성장하는 과정을 계기적으로 살핀다. 그간의 연구는 생산자층인 민의 성장을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또한 정치 참여층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민의 성장을 살피는 양갈래 양상을 보였는데, 연구자들은 이것이 “토대와 상부구조를 해명함으로써 기여한 바가 크지만, 연구자간 입장 차이가 상당해 혼란을 초래해왔다”라고 지적한다.

그 격차와 혼란의 해소를 위해 택한 방법은 다소 ‘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이 책은 고려시대까지 민이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民惟邦本’의 유교적 정치사상이 받아들여지는 고려시대부터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민은 군주의 하늘’[民爲君天]’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어나갔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살피고 있다.

연구자들은 조선 건국시기 지배-피지배 계층을 합쳐서 부르는 ‘同胞’ 또는 ‘同類’라는 말이 쓰였으며, 양자를 상보적인 관계로 보는 시각이 등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치가 곧 교화라고 생각했던 성리학자들은 민에게도 유교적 덕목을 실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개괄적이지만 실증적으로 차근차근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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