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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놀이의 시각으로 본 주5일 근무제
[흐름]놀이의 시각으로 본 주5일 근무제
  • 교수신문
  • 승인 2001.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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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7:38:40
이승렬 / 영남대·영문학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은 사라진다’를 보면 주인공이 신탁을 수행하기 위해 양아들을 직접 처형하고 식음을 전폐한 채 칩거하다 이웃 마을에 놀러가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다른 부족의 관습과 다른 인종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대목이 나온다. 소설에서 이 장면이 갖는 의의는 소설의 프로타고니스트가 휴식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배하던 사회적 가치 체계와 관념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장면을 떠올리는 이유는 주 5일 근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 5일 근무를 반대하는 재계의 주장이나 추진하는 정부의 주장은 모두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출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재계 쪽의 우려나 레저 산업과 문화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방어 논리 모두 생산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인간다운 삶을 누릴 노동자들의 인권과 같은 시장 경제와 갈등 관계에 있는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정착된 주 5일 근무제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논쟁과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유로움 속의 놀이 행위에 대한 그릇된 관념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청소년기부터 입시 스케줄에 맞춰 부지런함과 성실만을 삶의 유일한 덕목으로 교육받아 왔으며, 이러한 태도는 사회 생활에서도 한치의 어김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삶 속에 비판 이성이나 창의력이 깃들 리 만무하다. 무한 경쟁만이 유일한 원리가 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같은 보편적 가치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리 없다.
한국 근대화의 상징인 한강 다리 하나가 붕괴되어 죄 없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장되고,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당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민들에게 던진 말은 “다시 뛰자”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모든 비이성적 양상은 그저 뛰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진단과 처방은 방향을 한참 잘못 잡은 것이었다.
나는 주 5일 근무제를 우리가 지금껏 달려온 길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계기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최근 한 시민 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도 주 5일 근무제 정착과 맞물릴 때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일주일에 하루 한 번 더 쉬는 여유는 자기 자신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더 주어진 휴일을 활용하여 책을 갖고 한껏 여유롭게 놀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주 5일 근무제를 제안하면서 레저촵문화 산업의 활성화나 기대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상상력 빈곤은 그 동안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특별히 낯설거나 비난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주 5일 근무제의 역사적 의미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놀이는 결코 태만이 아니다. 하루 더 놀자. 책읽기 같은 문화 활동을 통해 멋지게 놀자.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팩의 사랑놀이가 아름다웠던 것은 그것이 왕실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근엄함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탈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책읽기를 통한 이성의 살찌움은 결코 일탈적이지만은 않다. 하루 더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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