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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존재의 일치, 그리고 덩어리 존재론
사유와 존재의 일치, 그리고 덩어리 존재론
  • 손영식 울산대
  • 승인 2006.10.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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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_정재현 교수에게 답한다

⑴ 大國 의식 - 나는 한 때 그런 것을 꿈 꾼 적이 있었다.
데카르트는 코기토(cogito)를 말했다. 내가 명석 판명하게 생각한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나의 코기토를 진리로 감히 믿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큰 나라의 학자들은 별 다른 거리낌 없이 자신이 생각해 낸 것(cogito)을 진리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聖敎量에 의지하지 않으면 허전해 한다.

철학은 논리로 말한다. 철학적 사유는 논리적 추론이다. 이 사유의 결과를 존재하는 사실로 믿을 것인가. ‘사유=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논리적 추론의 결과는 왕왕 현상과 반대로 나타난다. 그것을 일반인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 추론을 비웃고 비난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만 존재한다고 했던 파르메니데스나, ‘白馬非馬’를 주장했던 공손룡 등이 당했던 현실이었다.

⑵ 나는 혜시의 “천하의 한 복판은, 월나라 남쪽이면서 연나라 북쪽인 지점”이라는 명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해, 혜시가 여러 세계의 존재를 상정한 것으로 봤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혜시도 장자처럼 ‘하나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다차원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나의 명제 해석의 논리성 여부를 비판하지 않고, ‘주위 배경 사정’이라는 방증을 가지고 나의 해석을 부정한다. 그러면서도 나의 해석은 ‘엄격한 논리적 분석의 귀결’이 아니라고 한다.

⑶ 정 교수는 공손룡의 ‘하얌과 딱딱함이 분리됨’(離堅白) 등의 명제는, 공손룡이 “개념도 구체적 사물과 마찬가지로 취급한 것”이라 한다. 나아가 고대 중국 사람들은 “물(water)이나 가구(furniture)와 같은 물질, 즉 덩어리의 존재론‘만 가지고 있다는 차드 한센의 이야기에 따른다.

아무리 공손룡이 멍청이이지만, 개념과 구체적 사물을 구별하지 못 했다는 것인가. 그래서 실제 닭발 둘과 똑같은 것인, 개념으로 ‘발’ 하나, 이래서 “닭의 발은 셋”이라 했다는 말인가. 한센의 말처럼 중국 사람들은 이 물질 저 물질, 이 덩어리 저 덩어리만 말했지, 버클리 식의 관념론이나 보편자 이론,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개체와 속성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물론 한센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공손룡이 개념과 사물을 동일시했을 수도 있다. 추상적인 개념은 없고, 그냥 물질 덩어리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전제로는, 공손룡과 혜시, 변자들, 나아가 묵경의 명제들을 일관되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센은 서양 사람들의 중국 철학 연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아무리 중국 사람들이 미개하더라도, 제자백가의 그 다양한 철학 안에 ‘개체-속성, 실체-속성’ 구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⑷ 이래서 나는 명가 철학 해석의 원칙에 하나를 더 첨가하고자 한다; 혜시나 공손룡 등 명가 학파의 명제가 이상하다고 해서, 그들의 명제를 원시적인 사유로 치부하지 말자. 그들의 명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하자.
⑸ 정 교수는 명가의 명제를 버클리의 관념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위격(속성들 간의 포섭 관계)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혜시나 공손룡, 나아가 제자백가들에게는 그런 사유가 없었다는 ‘과문함’이다.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버클리 등의 이론도 채택할 수 있지 않는가. 혜시 공손룡의 명제가 바로 그런 사유가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는가. 정 교수에게는 서양철학에 있는 사유들은 오직 서양에만 있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유를 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속성의 구분, 개념들 사이의 포함 관계 같은 초보적인 것을 혜시 공손룡이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가.

⑹ 정 교수는 새 주장을 한 사람이 ‘증명의 부담’을 진다면서, “근거들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핍박해 주기”를 원했다.

그는 명가 명제에 대한 나의 해석을 비판하지 않고, 방증만으로 비판을 한다. 혹은 한센처럼 중국에는 덩어리 존재론만 있었다는 것, 혹은 서양 철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시각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인데, 어떻게 조목조목 비판할 수 있는가.

그는 기본적으로 한센 식의 발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자유다. 중요한 것은 명가의 명제의 해석이다. 나는 내 책의 가치가 명가 명제의 논리적 해석에 있다고 생각한다. 방증이나 덩어리 존재론 같은 것을 떠나서, 나의 명제 해석 자체를 비판해 주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생산적인 길이라 믿는다.

손영식 / 울산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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