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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시각으로 현대사 보기···민주화 과소평가 의문
실용적 시각으로 현대사 보기···민주화 과소평가 의문
  • 김용복 경남대
  • 승인 2006.10.30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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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권태준 지음, 나남출판)

권태준 교수의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는 체계적이고 방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 현대사 해석서이다. 저자는 지난 반세기가 산업화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의 시대에서 이제 세계화와 정보화의 미래로 나아가는 매우 압축적인 발전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면면마다 해박한 지식과 각고의 노력이 들어간 이 책은 단순한 현대사 다시보기 수준을 뛰어넘어 논쟁과 연구를 불러일으키는 역작이다.

저자의 주요한 분석대상이자 역동적인 산업화의 주체는 강력하고 능력있는 ‘국가’였다. 그래서 저자는 개발독재체제에 대한 새로운 조망에 가장 큰 관심과 비중을 보인다. 그렇지만 ‘민족공동체적 함께 잘살기를 지향한’ ‘어쩔 수 없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던 개발독재의 성과에 대한 정당화를 넘어서는 저자의 ‘의제 자본주의’론은 국가의 중심성을 과도하게 강조한 듯이 보인다. 냉전형 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된 분단 한국의 국가는 내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외적인 규정성에 의해서 그 성격과 강도가 결정되어 왔다. 국가의 능력과 자율성도 사회세력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체제나 분단구조와 같은 외부의 환경에 제약되어 왔다. 이것이 개발독재에 대해 발전국가론이나 종속론의 함의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은 ‘국가’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나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국가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명료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민주화시대에서의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세계화시대에 재벌에 대한 주목으로 슬며시 넘어가는 부분에서 대안적 패러다임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간다.

저자의 관심이 지배담론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발독재체제의 ‘성장담론’은 ‘민주화 담론’과는 대립적이지만, 태생적인 쌍생아였다. 민주화 담론은 개발독재에 저항하면서 형성되었다. ‘성과’에 매몰되어 ‘과정’에 대한 경시로 이어지는 개발독재 정당화론은 민주화이행의 의의와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우려가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시민사회의 일상적인 담론은 지배담론에 이끌리거나 저항하면서 이어져왔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 당시의 ‘논쟁’이나 ‘대립’보다는 현재의 ‘논쟁’ 속에서 과거를 재해석하여 과거의 일상성을 희석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반세기의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현재의 운동권세대들에 대한 좁은 비판 때문에 감추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정치세력의 부침을 보아왔다. 386세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저자의 거시적인 조망을 흐트러버릴 소지를 안고 있다. 정치권의 유별난 이념논쟁을 비판하지만, 저자는 산업화의 성과를 무시하는 운동권 엘리트들의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기’라는 과거 비판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면서 오히려 이념 논쟁속에서 적극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특정 정치세력의 공과를 넘어서는 시대정신, 역사적 흐름에 주목하는 것이 저자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걸맞은 문제의식이라고 생각된다.

이념논쟁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는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민주정치가 ‘이익 패러다임’이 아닌 ‘이념의 패러다임’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 타협보다는 도덕적 규탄과 이념적 비판에 열중하는 비실용적인 상황이라는 지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념논쟁의 실체에 대해서 저자의 분석이 취약해 보인다. 사실 저자가 산업화이후 한국사회의 주요한 갈등을 지역균열에서 찾은 것도 정치적 대립과 갈등에 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갈 때 느껴지는 계급적, 민족적 갈등을 시민사회와 계급의 미발전이란 미명하에 애써 눈을 감아버린 것은 아닌가. 최근의 사회적 양극화 문제도 거대담론이란 시비로 치부하기에는 풀뿌리 민중의 심각한 일상적인 문제임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국가의 비전과 정책을 둘러싸고 더 치열한 이념논쟁을 요구한다. 현존하는 보혁갈등이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정책적 경쟁과 민주정치과정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생산적인 논쟁을 위한 풍부한 토양을 제공하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김용복 / 경남대·정치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제자유화시기에 있어서 산업조정의 정치: 한국과 일본의 산업정책과정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발전모델’, ‘한국정치연구의 쟁점과 과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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