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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역사를 통해 본 식민지적...
가족의 역사를 통해 본 식민지적...
  • 권명아 한양대
  • 승인 2006.10.30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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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김혜경 지음, 창비)

김혜경 교수의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는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일제하 ‘어린이기’의 형성과 가족 변화에 관한 연구’(이화여대 사회학 박사학위논문, 1998)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김혜경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은 여성사나 젠더사 연구자들에게는 이미 ‘고전’으로 간주될 만큼 근대성과 젠더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는 식민지적 근대의 형성 과정에 작동하는 젠더 정치의 측면을 가족에 관한 근대적 이념과 근대적 주체의 형성(특히 전문가 집단) 및 근대적 제도(학교, 의료, 종교)의 관계라는 복합적인 지형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저자도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한국에서 초창기 가족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주로 1960년대의 ‘근대화’ 시기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그런 점에서 김혜경 교수의 연구는 가족사 연구를 식민지적 근대의 젠더 정치라는 차원에서 밝혔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에서는 근대적 이념과 근대적 주체의 형성, 근대적 제도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점들을 천착하고 있다. 또한 이는 젠더사의 관점이 식민성과 근대성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하나의 보완적인 시각이 아니라 역사상 전체를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대안적인 시각이라는 점 또한 입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김혜경 교수는 근대적 가족의 형성과 변화 관계를 1. 식민지적 권력과 2. 행위자(가족)의 대응, 3. 이와 관련된 주요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면서 근대 가족 개념의 표준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먼저 식민지적 권력의 차원에서는 사회사업과 우생학을 기조로 한 인구 정책과 학교 제도를 통한 가정 관리의 새로운 방식, 가족법(조선 ‘전통’을 활용한 일본 가족 제도 도입) 등이 중요한 담지자로 고찰되고 있다.

또한 가족을 둘러싼 또 다른 주요 세력은 가족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역할을 담당한 전문가 집단이었다. 이 전문가 집단은 식민지 권력과 갈등하면서 순응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는 식민지하 근대 제도의 수립에 문화적 헤게모니를 지녔던 의료, 사회사업기구, 유치원 등의 학교 제도가 포함된다. 또 가정학자나 유아 교육학자 등의 전문가들은 가정과 제도 사이의 매개자로서 주부들에게 ‘새로운 가정의 이념과 주부의 역할’을 내면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문화 민족주의나 개조론, 일부 신여성의 ‘가정주의’ 역시 이러한 담론 생산을 주도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김혜경 교수에 따르면 식민지적 권력과 전문가 집단에 의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근대적 가족 모델과 이념 속에서 행위자(가족, 여성)들은 전략적이고 선택적인 대응을 했다. 또 전문가 집단은 식민지 권력과 ‘가족’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권력과 전문가 집단, 가족의 관계는 수형도와 같은 상하의 위계 관계 관계를 지녔던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갈등, 길항하면서 상호 작용하는 세력들이다.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식민지하 근대가족의 형성과 젠더’는 가족 제도, 이념, 표준 모델이 구성되는 과정이 여타의 국가 기구 및 제도 및 이를 둘러싼 헤게모니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또 근대적 학문, 제도의 성립과 담지자의 형성 과정이 어떻게 젠더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으로 김혜경 교수의 연구는 근대적 학문, 제도, 담지자에 대한 연구는 젠더적 관점이 개입되지 않는 한 여전히 ‘반쪽’의 연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김혜경 교수의 연구는 가족에 관한 담론에 집중하여 구체적인 가족의 현실을 탐색하지 못했다던가, 주로 엘리트 집단의 여성의 경험에 집중해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비엘리트 집단의 경험과 역사, 그리고 담론과 현실의 상호 관계를 탐구하는 것은 이제, 모든 역사 연구자의 몫이기도 하다.

권명아/한양대·국문학

필자는 연세대에서 ‘한국 전쟁과 주체성의 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사적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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