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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인가 도취인가…美 초현실주의 붐
도피인가 도취인가…美 초현실주의 붐
  • 박나영 자유기고가
  • 승인 2006.10.30 22: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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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예술동향: 마르셀 뒤샹에 주목하는 미국

누군가가 변기를 뒤집어 ‘바보 1917’이라고 서명한 후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관으로 보내 왔다면, 그것은 변기인가 샘인가. 예술인가 장난인가. 실체인가 허구인가.

‘샘’(마르셀 뒤샹, 1917)의 발칙한 등장 이후, 쇠똥에서부터 재활용 우유팩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예술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 가운데에서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우리는 이 같은 고민으로 골치를 썩힐 필요가 없다.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잘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는 무언가를 놓고 예술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때,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간의 경계를 가르는 일이 녹녹치 않을 때, 그럴 때 우리에게는 ‘큐레이터’가 있다. 맥신 가이버 델라웨어 현대 미술관 전무이사가 지난 22일자 델라웨어 온라인 뉴스 저널(Delaware Online: The News Journal) 칼럼에서 천명했듯, “큐레이터는 예술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 정의하고, 어떤 작품이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져야 할 지 여부를 결정하며, 예술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10월 들어 유난히 마르셀 뒤샹이 각종 전시회 및 예술 담론에 등장하는 횟수가 잦았다. 큐레이터들이 대중에게 뒤샹과 뒤샹의 작품을 조명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판단한 듯싶다.

지난 24일에는 ‘뉴욕타임즈’가 ‘소시에테 어노님: 미국을 위한 모더니즘’(The Soci?t? Anonyme: Modernism for America)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소시에테 어노님은 뒤샹과 캐서린 드레이어가 ‘미국 시민들에게 현대 미술을 전파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한 미술 단체로, 특히 1920년대에서 3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 동안 끊임없는 전시회 개최와 강연을 통해 미국 시민들에게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뒤샹의 ‘샘’이 독립 예술가 협회(The 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로부터 거부당했을 당시 드레이어가 작품의 ‘예술성’을 강력히 주장해 전시를 가능하도록 도와준 것을 인연으로 소시에테 어노님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뉴욕 필립스 콜렉션에서 내년 1월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뒤샹, 막스 언스트, 와실리 칸딘스키, 콘스탄틴 브랑쿠시, 피에 몬드리안, 맨 레이, 프란시스 피카비아, 조셉 스텔라 등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으로 짜였다. 특히 ‘당신이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깨우쳐 주는 모더니즘’이라는 컨셉트를 내걸고 이들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이제껏 조명을 받아오지 못했던 1백30여 점을 엄선해 소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 26일자에서 “런던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 (V&A)이 내년에 아르누보, 아트 데코, 모더니즘 등을 포함하는 대대적인 ‘초현실주의’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전시회는 ‘초현실주의에 숨어 있는 유머’를 주제로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뜨, 레이, 언스트, 호앙 미로, 이사무 노구찌 등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초현실주의 속에 숨어 있는 유머를 재조명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자들에게 ‘환상’, ‘꿈’ 혹은 ‘희망’과 같은 감정들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francisco Chronicle)은 지난 14일 독특하게도 뒤샹의 초상화가 등장하는 작품 ‘펜의 주머니’(Penn’s Pocket, 1992)를 소개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앵그림 지방에서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데, 바로 여기에 문제의 작품이 전시된 것.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뒤샹이 아일랜드의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술 전문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아트뉴스’(ARTnews)에서는 지난 9월‘뒤샹의 에로티시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뒤샹의 작품은 주로 기계의 관점에서 性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의 ‘다다이즘’ 카탈로그에 실린 에세이를 들어 뒤샹의 ‘독신 남자 친구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이븐’(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1915~1923)은 자아도취적 욕망이 정교하게 표출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서구권의 큐레이터와 예술 담론가들은 마르셀 뒤샹이라는 인물에 주목하는가. 꾸준히 ‘뉴욕타임즈’ 인터넷 검색어 랭킹 10위 안을 들락거리던 ‘북한’이라는 단어가 북한 핵실험 발표와 함께 드디어 1위에 올라섰다. 북핵은 실체인가 허구인가, 예술인가 장난인가, 북핵인가 샘인가. 미국은 어떤 답을 원하는가.

박나영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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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06-11-01 09:19:31
뒤샹의 [샘]은, 남녀가 앉아서 일 보는 '변기'가 아닙니다. 남자들이 서서 쏴 하는 '소변기'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