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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惡’으로부터의 구원…삶의 우연성 강조
‘정치적 惡’으로부터의 구원…삶의 우연성 강조
  • 홍원표 한국외대
  • 승인 2006.10.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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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한나 아렌트 ‘르네상스’의 주요 내용들

아렌트 탄생 1백주년을 맞이한 올해에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성찰하는 학술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혁명과 폭력의 세기 한 가운데 살다가 타계한지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아렌트는 왜 학계의 ‘우상’이 되고 있는가. 과거의 사상을 현재에 재현시키는 요인은 아렌트의 학문세계에 내재돼 있는가, 아니면 외재하는가. 아렌트 연구자든 애호자든 이런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아렌트 연구는 정치학과 철학 영역에 머물지 않고 문학, 역사,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신학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렌트의 저작들은 출판 당시에도 엄청난 논쟁을 야기했듯이, 최근의 아렌트 연구 역시 복잡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외형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을 ‘타락(왜곡)’과 ‘순수’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전제하고 논의하고 있다. 이는 전체주의의 타락한 정치를 극복하고 순수한(또는 진정한) 정치를 모색하고자 했던 아렌트의 의도가 연구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 따라 최근 연구의 특징적 양상을 중점적으로 고찰한다.

아렌트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분야는 단연 (정치)철학이다. 전체주의의 악을 규명하고자 했던 아렌트의 집착은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도 그대로 반영된다. 9·11테러 이후 이데올로기 정치와 테러를 연결시키려는 논문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 것. 아렌트 전기작가인 영 브륄은 ‘전체주의의 기원’을 현재의 세계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는 요소로서 이데올로기를 들고 있으며, 나치의 ‘자연’이데올로기와 스탈린주의의 ‘역사’이데올로기에 이어 오늘날 도덕적 순수성을 옹호하는 ‘도덕’이데올로기의 충돌을 강조하고 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악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정치행위와 세계사랑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랑을 정치학적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순수한 정치의 근거로 삼고자 한 아렌트의 열망은 신 치바의 논문 ‘사랑과 정치적인 것: 사랑, 우정, 시민권’에 의해 명료하게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시작능력을 말살한 전체주의 악에 의한 인간성 상실에 주목해 아렌트의 인권사상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아렌트 정치철학의 국제정치적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코소보 사태 등을 계기로 아렌트의 인권사상을 현실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들도 다수 있다.

문학예술 분야에서 아렌트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분야에선 특히 이분법적 구도가 뚜렷하다. 아렌트와 오든의 사상을 조명한 수잔나 영 고트리브의 ‘고통의 영역’은 두 사람의 사상에 나타난 메시아니즘을 부각시켰다. 두 사람은 대재앙을 공동으로 경험했으며 새로운 현상, 즉 전례없는 뿌리상실감을 경험했다. 고트리브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과 고든의 ‘고뇌의 시대’가 메시아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아렌트는 새로운 시작으로서 행위를 역설한 ‘인간의 조건’에서, 오든은 그의 시 ‘깐조네’에서 의지에 내재된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메시아니즘은 정치적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적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렌트 연구에 있어서 정치(철학)과 문학을 연계시킨 탁월한 연구다.

아렌트는 정치적 삶의 우연성과 특이성을 강조하기에 구조적 인과론에 집착하는 학문인  사회학과 심리학의 특정 연구경향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전체주의를 연구한 피터 베어는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지적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즉 전례없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전체주의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심리학 분야에서 아렌트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빌스키의 연구는 괄목할만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행태를 심리학적으로 탁월하게 분석해냈다. 빌스키는 ‘아이히만 재판의 다른 목소리’라는 논문에서 정치적 악에 대한 재판과 관련된 논쟁을 심리학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교육학에서도 아렌트를 응용해 적절히 수용하고 있는데, 특히 아렌트 사상에서 ‘탄생’의 근본성을 구체적으로 적용시킨 적절한 수용이라 할 수 있다. 전체주의의 악이 시작능력의 말살이란 점에서 새로운 시작, 탄생은 죽음에 대한 안티테제다. 따라서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기초로서 교육은 정치적 악과 투쟁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다. 레빈슨은 ‘아렌트 교육사상에서 탄생의 역설’을 제시한다. 교육의 보존기능과 재생기능은 상반되면서도 상호 연계돼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신학분야 역서 선악문제와 관련해 아렌트를 통해 관심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버밍햄은 ‘망각의 소용돌이: 근본적 악의 평범성’이란 주제아래 전체주의의 ‘근본적 악’에 내재된 악의 평범성을 지적하고 있다. 매튜 역시 ‘두 가지 판단에 관한 이야기’라는 논문에서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신화를 벗겨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렌트의 선악이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역사학 분야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아렌트는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렌트의 저작들은 역사적 지식을 광범위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야기하기’로서 역사와 ‘시대의 비판적 중재자’로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라케르의 논문 ‘아렌트 우상: 정치평론가로서 한나 아렌트’에서는 정치평론가나 정치철학자보다 시대의 탁월한 비평가로서 아렌트의 위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각 학문분야의 특징적 양상을 고려하면, 선과 악, 타락과 순수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대한 전제가 기저에 깔려 있다. 그 어느 측면만을 분석할 때 장점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에서 내적 긴장구조를 상정하고 있는 아렌트의 의도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아렌트의 경우, 타락과 순수, 선과 악을 구분짓는 기준은 시작 능력의 유지와 상실이다. 최근 아렌트 연구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면, 학문 영역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작’ 또는 ‘탄생’이란 범주를 소개함으로써 아렌트의 ‘출생의 철학’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렌트 연구가 현대인의 삶에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지만, 아렌트 르네상스의 한 요인으로 정서적 또는 낭만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여성 정치철학자’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아렌트 정치철학을 서예의 필치로 특징화하자면, 섬세한 선과 굵은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측면만을 집중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렌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해와 곡해의 양면성이 존재하지만, 최근 경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의무로 남게 된다.

홍원표 / 한국외대·정치철학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레오 스트라우스, 에릭 보에글린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신의 삶 1: 사유’ 등의 역서가 있다.

   
  아렌트 탄생 1백주년을 맞기 전부터 아렌트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상당했다. 연구자들의 숫자는 몇 안되지만 아렌트 주요 저작들은 속속 번역돼 나왔다. 김선욱 숭실대, 홍원표 한국외대, 서유경 경희사이버대 교수 등 정치철학자들을 주요 멤버로 해서 얼마 전에는 ‘한나아렌트연구회’가 본격 출범되기도 했다. 이들이 주축이 되고 정치사상학회와 사회와철학연구회가 뜻을 모아 지난 14일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이라는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탄생일인 10월 14일에 맞춰 김선욱 교수가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을 번역·출간했으며, ‘전체주의의 기원’(이진우 옮김), ‘정신의 삶 2’(김석수 옮김), ‘정신의 삶 3: 칸트정치철학강의’ 등도 곧 번역돼 나온다. 또 ‘공화국의 의지’(김선욱 옮김)는 재번역판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권영빈 옮김)은 개정판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아렌트 사상은 이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며 이미 여러 곳으로 뻗쳐나가고 있다. 정치학에선 아렌트의 정치적 입헌주의 뿐만 아니라, 그의 윤리학 및 막스 베버와 비교해 고찰하는 등 연구가 활발하다. 페미니즘, 교육학, 나아가 불교연구자의 응용연구도 주목할만하다. 이은선 세종대 교수(세종대)는 아렌트의 ‘탄생성’과 왕양명의 ‘치량지’의 교육관을 비교해 연구물을 내놓았으며, 김인순 동국대 강사(정치철학)는 논쟁이 많은 아렌트 사상의 페미니즘적 측면을 고찰했다. 특기할만한 건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고옥 스님이 발표한 ‘탈속과 귀환의 중도에서 만난 아렌트’로서 아렌트 사상의 확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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