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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남명학·퇴계학 르네상스?
2001년, 남명학·퇴계학 르네상스?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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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7:26:36
5백년 묵은 생각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5백년 전에 일궈낸 기술의 진보라면 지금 별무소용인 낡은 것이겠으나, 묵히고 삭혀진 사상은 그 ‘낡음’으로 인해 우리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도 위험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이 태어난 지 올해로 꼭 5백년이다. 신년 벽두부터 남명과 퇴계의 영정이 신문방송 매체를 통해 넘쳐났다. 특히 8월은 남명, 10월은 퇴계의 탄신일로, 국제적인 규모의 학술대회도 그 시기에 맞춰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적 규모의 학술행사로는 16일부터 이틀동안 1차로 경남 산청 삼성산청연수소에서‘남명학과 21세기 유교 부흥운동의 전개’를 주제로 시작됐다. ‘역대의 남명 인물론에 대한 검토’를 정만조 국민대 교수(국사학과), 한명기 규장각 특별연구원의 ‘인조반정 이후 북인 동향’, ‘남명학파 정치사상의 현대적 재조명’을 권인호 대진대 교수(철학과)가 발표를 맡아 남명학의 현대적 변용을 탐구하기도 했다.

인접학문과의 유기적 관계정리 시급

이런 작업들은 이미 곳곳에 포진한 남명학 연구단체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창간호를 발행한 ‘남명학연구’는 각 대학 연관학과와 연과 연구소, 그리고 국학연구단체에 배표되고 있는 남명학 관련 전문학술지이다. 지역거점으로는 경상대 남명학연구소가 있는데 ‘남명학당’을 개설하여 일반 시민과 학생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남명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모습, 處士로서의 위상이 일반인들에게도 파급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남명의 사상은 같은 해에 태어난 퇴계에 비해 연구가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명의 학맥이 광해군 당시 북인정권에 참여했다가 인조반정 이후 실각하여 거의 끊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남명 자체가 저서를 많이 남기기보다는 실천에 치중했기 때문에 문헌학적 연구기반이 미약한 편이다. 남명의 제자들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싸워낸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남명사상의 5백년 묵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남명학의 문제는 사적 정리와 횡적 정리의 빈약함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설석규 경북대 강사(역사학과)는 “연구사 정리 하나 없을 정도로 체계화와 정체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데다, 퇴계학이나 율곡학과 같은 인접학문과의 유기적 관계보다는 배타적 관계 속에서 남명학의 위상정립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한 남명에 대한 과도한 해석도 마찬가지 문제를 낳는다. 대표적인 경우는 남명을 18세기에 대두하는 실학자의 원조로 읽어내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대해 설 강사는 “16세기의 시대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 방책을 제시하면서 독자적 삶을 살아갔던 자기 시대의 실학자였던 것”이라면서 굳이 실학자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서는 엄격히 구분해주어야 할 조건을 강조했다.

지금의 연구동향에 대한 쓴소리는 퇴계 이황 연구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대 퇴계연구소가 발간한 ‘퇴계학연구총서’에 따르면, 해방 이후 국내외 학계에서 발표한 퇴계학 관련 연구 논문과 학위 논문, 단행본 숫자를 합하면 1천건에 육박한다. 연구소 또한 지난 1972년에 문을 연 퇴계학연구원, 경북대학교(1973년), 단국대학교(1987년), 안동대학교(1989년) 등의 퇴계연구소, 일본의 이퇴계연구회(1972년), 국제퇴계학회(1985년) 등 197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양적인 팽창이 이뤄졌다.

이같은 폭발적인 연구증가를 근대화론과 민족적 보수주의에 의한 지배 문화의 복원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문용 고려대 연구교수(민족문화연구원)는 5백주년을 맞이하여 대규모 학술대회의 개최, 대중 매체, 퇴계학 관련 학술기관 등에서 ‘퇴계 특집’이 판을 벌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퇴계가 대단한 물리력으로 우리 사회에 실재한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계는 살아있는가’ 라는 물음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학계에서 퇴계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빈약하고 유기적 구성물로서의 퇴계학을 구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소득 빈약한 ‘국제학술대회'

학계 내부에서는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김기현 성균관대 책임연구원(유교문화연구소)은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열린 총 16회의 국제 퇴계학 학술대회를 이제는 점검해야 한다고 성토한다. 국제퇴계학대회가 성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소득 가운데 ‘인맥 관리’라는 정치 외교적인 의미에서는 대성공이었지만 ‘퇴계학 정립’이라는 학술적 의미를 볼 때 큰 소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퇴계학의 본산으로서 ‘유명유실’한 ‘세계 속의 퇴계학’을 이뤄야 한다는 당위도 작용한다.

남명학과 퇴계학은 우리나라 중세문화의 절정기에 배태된 정신자산이다. 5백년이 지난 지금, 그 유산의 성과를 사산시키지 않고 또 다른 르네상스를 바란다면 남명학과 퇴계학 내부의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 두어야 하겠다. 5백년 후를 다시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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