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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삶과 교육, 그 오묘한 관계
[나의 강의시간] 삶과 교육, 그 오묘한 관계
  • 김재웅 서강대
  • 승인 2006.10.21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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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웅 (서강대, 교육학)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 가운데 하나는, 전공이 교육학이니까 다른 전공 교수들보다는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전문성이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수업에 대해 스스로 높은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새 학기가 되면 설레는 마음이 있지만, 교실에 들어서는 것이 한편 두렵기도 하다. 특히 교직과목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졸업 후 학교 등에서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긴장되기도 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곧바로 미래의 그들의 수업 모습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훌륭한 수업과 관련해서 교과의 내용과 교수방법, 이 둘이 모두 중요하지만 나는 전자가 후자에 우선한다고 본다. 내가 열정을 느끼고 있고, 그것에 대해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만 확실하게 붙들고 있다면, 내가 깨달아 알고 있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못 견뎌 하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닐까? 그러한 콘텐트만 내 몸속에 녹아 있다면,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추어 또 그 콘텐트의 특성에 맞추어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과목 가운데 “삶과 교육”이라는 과목이 있다. 나는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교육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삶과 교육이 맺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르게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나 스스로가 나의 사부님인 장상호 교수를 통해 이것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삶을 위한 교육”을 이야기 한다. 교육이 삶을 위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교육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수업에서는 교육은 삶을 위해 기여하기도 하지만, 교육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내재적 가치가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선 나는 학생들이 십여 년 간 몸담고 생활해 왔던 학교라고 하는 생활세계와 인간의 삶의 한 양상으로서 자율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교육”을 이론적으로 구별하는 데 수업의 첫 부분을 보낸다. 이어서 교육 현상을 교육으로 보게 해 주는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이 담뿍 담겨 있는 영화, 예컨대 “갈매기의 꿈”, “빌리 엘리엇”, “홀랜드 오퍼스” 등을 함께 보기도 한다. 아울러 모둠별로 학교가 아닌 공간을 탐방하여 거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포착하여 발표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사이버 캠퍼스를 활용하여 교실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과 응답하기도 한다. 교실에서 시간이 모자라 나누지 못하는 경우 사이버 캠퍼스는 연장된 교실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특히 수줍어서 학급에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학생들에게 이 사이버 공간을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이 되기도 한다.

중간시험은 항상 논술식으로 출제한다. 답안지를 꼼꼼히 읽어 오자나 비문을 체크해주고, 논의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하나하나 적어서 돌려준다. 수업 끝날 때 쯤, “이 과목을 1학년 때 들었더라면 학창시절을 이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4학년 학생이나, 앞으로 “교육 본위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1학년 학생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학생들의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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