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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2001년 여름, 지식인 논쟁의 지형
초점 : 2001년 여름, 지식인 논쟁의 지형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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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지식인의 위상 … 미디어 권력에서 벗어나야
지식인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식인과 권력, 지식인의 위상변화, 지식담론의 윤리를 두고 공방이 한창이다. 그동안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논쟁'이 없었다. 이론적 차원의 논쟁은 존재했을지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우리는 이 논쟁이 보다 확대되고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본지는 '기로에 선 한국의 지식인 사회'라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독자제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지식인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촉발된 논쟁은 이제 지식인에 대한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보편적 가치라는 이름아래 숨어있던 지식인들이 자신의 선명한 입장과 이념을 노출하며 '커밍 아웃'하고 있다. 논쟁의 계기는 지난달 조선일보에 게재된 '위기의 지식인 사회' 시리즈.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비판했던 조선일보의 '국면전환용' 의제설정이었던 셈이다.
지난 15일에는 원로지식인들로 구성된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이 성명서를 발표, 최근의 상황을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데 온 힘을 쏟아 붓고 있는 살벌한 풍경"으로 비판했다. 원로성명은 구체적인 비판을 생략한 채 모호한 양비론의 시각을 견지, 위기를 돌파하는 '지혜'를 보여주진 못했다. 이 성명은 언론의 입맛에 맞게 기사됨으로써 '기득권세력'을 옹호하는 논리로 귀결되고 말았다.

지식인 사회의 '위기'를 보는 시각

지식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먼저 '위기론'으로 표출되었다. '편가르기'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진우 계명대 교수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배규한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사회가 위기이지, 지식인 사회가 위기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어떤 시각도 총체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입장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중도적 목소리의 위축'을 우려한다. 그는 "지식인은 권력과 반권력으로부터도 자율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에서는 지식인 사회의 분열은 필연적이며, 이를 통해 지식인사회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는 "편가르기, 혹은 키재기는 그 후유증까지를 포함해서 오히려 현금의 우리 사회가 겪어내야할 계몽과 성숙의 일단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론'이 언론사 세무조사, 남북관계등의 쟁점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과 입장차에 주목하고 있다면 보다 심층적인 차원의 '지식인 위기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논리는 지식기반사회의 등장, 신지식인론의 대두, 거대담론의 붕괴 등의 변화속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이 쇠락하고 있다는 사정과 맞물려 있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국문학)는 '전망의 상실'과 '지식상업화'를 주요한 위기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정 교수는 현재 상황을 "지식사회의 기반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진단한다. 자생적 학문을 수립하기 위한 70년대의 노력이 유신체제의 물리적 압력에 의해 좌절되고, 80년대의 맑스주의적 전망 또한 붕괴됨으로써 '전망없는 혼돈의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박한 지식 상업주의가 지식사회의 토양을 더 척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현재의 지형을 "전망을 상실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는 '보편담론의 약화'에서 위기를 찾고 있다. 그는 "한국 지식인들은 구체적 '현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서구학문을 인용만 해도 되는 '일반적인' 얘기만 해왔다"고 비판한다. "환경운동하는 지식인이 성명서만 발표해도 지식인으로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실제 수행이 지적담론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곧, '사변에서 사적 실천으로', '일반론에서 구체적 입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에서 멀어진 지식담론
지난 17일 개최된 언론학회 심포지움에서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객관성이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은 이념과 입장에 따라 사건을 해석할 수밖에 없으며, 객관성이란 노력을 통해 도달해야할 과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보도=객관적 진실이라는 도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는 지식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존재였다.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사심없는 비판으로 한 사회가 나가야할 길을 제시해왔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지식인 논쟁은 지식인 역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사회·문화적 구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그의 '담론'은 더 이상 보편적 가치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상봉 문예아카데미원장(철학)은 "설교를 통한 계몽이라는 지식인의 사제적 권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위기라면 위기"라고 말한다. 15일의 원로성명에 대해서도 "사태 자체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막연한 의미의 모랄만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 원장은 지식인과 언론은 더 이상 '진리의 설교자'나 '파수꾼'이 아니라고 본다. "시민들의 자기계몽이 성숙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식인의 위상도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적 지식인'은 여전히 유효한가. 최근 '독립된 지성은 존재하는가'(삼인 刊)을 펴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비가시화된 지배질서의 내막을 폭로하고,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질서와 배치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위협이나 시장의 횡포로부터 시민사회를 지키는 지식인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저널리즘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식인 위기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식인이 언론매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 권력에 의해 압도되어 자율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권력과 반권력으로부터의 자율, 국가권력과 시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 않게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디어로부터의 자율'일 것이다. 지금의 논쟁이 좀더 심화된 토론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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