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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고전] 엘리아데의 [성과속]
[우리시대의고전] 엘리아데의 [성과속]
  • 배국원 / 침례신학대·종교철학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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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4:36:53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학자인 멀치아 엘리아데는 80년간의 긴 생애를 끊임없는 글쓰기로 채워 나갔던 학자였다. 방대한 엘리아데의 저작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서로서 불과 2백여 쪽에 불과한 ‘성과 속’을 거론한다는 것은 의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엘리아데 종교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저서로서 그의 종교관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저서이다. 또한 이 책은 일반독자들에게 ‘종교’의 의미를 알리는 데 가장 성공한 책이기도 하다. 이른바 세속화 시대를 살고있는 현대인들에게 ‘그 때 그 시간’이라는 원초적 신화의 시간을 동경하던 고대인들, 즉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들이 가졌던 종교성의 의미를 밝혀 보여줌으로써 근원에 대한 향수를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종교의 핵심인 ‘성스러움’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들에게 있어 ‘종교’가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난해한 질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종교’개념을 도출하는 과제는 종교학자들에게 마치 블랙홀과도 같이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1917년에 출판된 루돌프 옷토의 ‘성스러움의 의미’는 종교의 본질이란 곧 성스러움이라는 사실을 역설하여 종교학의 돌파구를 연 작품이다. 옷토 이후 종교학자들은 성스러움이야말로 종교와 종교학의 핵심이 된다고 동의하여 왔다.

그러나 종교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하였던 옷토는 ‘성’의 의미를 지나치게 기독교신학적으로 윤색하였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옷토의 신학적 선입견을 제거하고 진정한 종교학적 시각에서 성스러움의 의미를 밝혔다는 점이 공적으로 꼽힌다. 엘리아데 자신의 말을 따르면 ‘성스러움의 총체’를 보여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성의 진정한 모습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엘리아데의 답변은 ‘성은 곧 속의 반대’라는 유명한 정의이다. 성이란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들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여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말 속에 바로 ‘성과 속’이 차지하는 종교학 고전으로서의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성이란 ‘나타난다’라는 것이다. 세상은 온갖 사물들과 일상적인 것들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어느 예기치 않은 장소, 사물, 시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어떤 것, 즉 비범하고 초월적인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흔한 보리수 나무가 부처가 득도한 후 지혜의 상징이 되고, 평범하던 요단 강이 예수의 침례 이후 생명의 강이 된다. 엘리아데가 ‘聖顯’(hierophany)이라고 부르는 성스러움이 나타나는 현상이야말로 ‘성’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거룩함은 언제나 세속적인 것과 긴장을 유지한다. 곧 성속의 변증법 혹은 성속의 역설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삶이 근원적으로 성과 속의 이중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의 확인이 성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균질적인 것과 비균질적인 것,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의 이중적 구조 속에서 성은 언제나 자신을 역동적으로 새롭게 나타낸다. 성속의 근원적 이중구조에 대한 이해에 의거하여 엘리아데는 성스러운 시간, 공간, 물체 등 여러 가지 성현의 의미를 분석하는 종교현상학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주로 고대인들의 종교성을 서술하는 그의 종교현상학이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된다. 나아가 최근에는 엘리아데의 ‘성’ 개념 역시 은밀한 신학적 암시를 감추고 있다는 반발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옷토의 신학적 윤색을 비판하고 극복하였던 엘리아데가 이제 후학들로부터 똑같은 비판을 받게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멀치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 1907~1986)

 
1907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시티에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종교와 철학관련 글과 문학평론을 발표할 만큼 지적 조숙성을 보여주었다. 부쿠레시티대에서 이탈리아 철학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인도철학사를 읽고 나서 신부의 꿈을 접고 인도로 갔다. 캘커다대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스승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히말라야에서 요가수행에 전념했다. 그는 20세가 되던해 이미 1백번째 기고문 출판을 자축할만큼 천부적인 저자로 알려져 있었다. 『비교종교학의 유형들』,『샤머니즘』, 『요가』 등 종교학의 중요 단행본들 뿐만 아니라 소설 『금지된 숲』과 세 권의 『자서전』에 이르기까지 엘리아데의 왕성한 저술활동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종교학의 자랑스러운 성과인 총 16권에 이르는 『종교학백과사전』의 편집 총책임자로서 그의 명성은 지울 수 없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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