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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신경제의신화와 현실'
[깊이읽기]'신경제의신화와 현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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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28 15:30:31
관계와 학계를 주름잡던 '신경제 예찬론자'들이 약속한 듯 입을 다물었다. 반면 신경제의 '승승장구'에 숨을 죽여온 좌파는 물을 만났다. "새로운 자본주의? 웃기지 말라!" 물론 그 동안 '거품경기'에 대한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 실물경제의 수익성은 98년을 계기로 뚜렷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실물경제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주가폭등과 소비지출의 증대 덕분에 경제는 지속적인 호황국면을 누려왔다는 데 있었다. 전형적인 '거품호황'이란 견해가 좌파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신경제의 신봉자들은 이를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일축했다.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해 주도되는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에서 고전적인 경기순환이론은 무의미하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기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90년대 초반 '신경제'라는 신조어를 유포시켰던 '파이낸셜타임스'조차 "그 동안의 생산성 향상은 수요의 대폭적인 증가로 이뤄진 경기순환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낙관론자들도 인정했다"며 신경제의 '기술순환' 테제에 사실상의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기에 이르렀다. 변화는 '신경제라는 환상'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좌파진영 안에서도 감지된다. 미국경제의 침체는 신경제를 '디지털혁명과 신자유주의적 조절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체제'로 규정했던 '절충론'(조절이론과 사회적축적구조이론)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신경제 현상'은 하나의 '축적체제'라 이름 붙이기엔 지속기간이 짧고, 지리적 범위 역시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한정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도래하는 과잉생산기의 거품'으로 신경제의 의미를 폄하했던 '정통 공황론자'들의 주장이 '상대적으로' 탄력을 받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와 함께 세계 좌파 학술지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는 지난 4월 '신경제: 신화와 현실'이라는 제하의 특집을 실었다. 필진에 참여한 사람은 '레프트비즈니스옵저버(Left Business Observer)'의 편집인 더그 헨우드를 위시한 5명의 소장 사회과학자들. 이들의 글이 이달 중순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번역·출간됐다. 신경제에 대한 '정통좌파적 비판'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책의 메시지는 다음의 짧은 진술 안에 집약되어 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모든 주요한 기술혁명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데 공헌해왔다. 그러나 앞선 기술혁명 가운데 어떤 것도 '신경제'나 '새로운 기술순환'을 창출하지 못했으며 오늘날의 디지털 혁명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작동의 경제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들의 문제제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신경제가 경제전반에 미친 효과는 1·2차 산업혁명의 그것에 비견될 만큼 대단치 않다는 것.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서비스 부문을 제외하고는 제조업 전반에 확산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95∼99년 사이 생산성 향상을 주도했던 업종은 신기술에 대한 수요가 집중됐던 서비스업이 아니라 내구재 제조업 분야였다는 사실이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들의 또 다른 지적은 '신경제가 경기순환을 길들인다'는 신경제 주창자들의 주장이 명백한 허구라는 것. 요컨대 '기술혁신에 따른 신시대가 도래하여 경기변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역사의 모든 장기호황국면에 주기적으로 등장했던 단골 레퍼토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볼 때 신경제의 발흥과 몰락은 새로운 '기술순환'이라기 보다는 "과잉설비의 증대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을 하는 고전적인 경기순환"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신경제의 미래는 자명하다. 과잉화된 자본의 대규모 가치파괴. 다름 아닌 공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황이 표상하는 위기의 이중성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극적인 현실화이기도 하지만 민중들에겐 삶의 재생산을 위협하는 격심한 생존위기란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과연 무엇이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할 것인가. 일국적 계급투쟁이? 지구화된 반세계화시위가?

한편 역자들이 날카롭게 지적하듯 이 책은 "신경제의 핵심 토대 가운데 하나인 미국 경제의 금융화와 금융시장에 관한 분석이 단편적"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사견이지만 기술적·산업적 차원과 금융적 차원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킨 설명틀로는 조절학파의 신경제 분석이 정통 공황론자들의 그것보다 더 설득력을 지닌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지우기 힘들다. 결례가 아니라면 지난해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가 펴낸 '디지털 혁명과 자본주의의 전망'(한울 刊)도 일독을 권한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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