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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샤르트르 20주기
[특집] 샤르트르 20주기
  • 정명환 / 전 가톨릭대·불문학
  • 승인 2001.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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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6 11:57:41
올해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1905∼1980년)의 20주기를 맞는 해이다. 1980년 4월 15일 영면한 그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이자, 실존주의의 문학적 선언인 ‘구토’를 집필한 소설가였으며, 무엇보다도 참여적 지식인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각별한 이유는, 저 신산스런 50년대의 한국지식인들에게 ‘문학의 실천적 의미’를 깨우쳐준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사유의 속살을 파먹으며 자란 한 국문학자가 “문학이 세계에 연결되는 맨 처음이자 입단식같은 것, 그 입구에 사르트르가 서 있었다”고 고백할 만큼 그는전후세대 지식인들의 사상적·문학적지주였다. 우리 신문에서는 오랫동안 사르트르의 문학과 철학을 연구해온 정명환 교수(전 가톨릭대·불문학)의 뒤늦은 弔詞를 싣기로 한다. 사르트르 사후, 그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시몬느 드 보봐르는 이렇게 적었다. “사르트르의 유해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으며, 날마다 미지의 손길이 그의 무덤에 작고 싱싱한 꽃다발을 가져다 놓는다”라고. 그러므로, 이 글은 그의 20주기에 바치는 ‘작고 싱싱한 꽃다발’이면서 동시에 사르트르 철학의 현재성을 묻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환멸의 시대와 사르트르

정명환 / 전 가톨릭대·불문학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어렵게 들리는 존재론의 이야기가 사실은 일상생활에서의 우리의 언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비근한 예를 많이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의 하나는 카페의 웨이터의 동작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 예를 통해서 그는 인간이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이른바 對自的 존재이며 사물과 같이 그 본질이 확정된 卽自的 존재가 아니라는 핵심적 주장을 더 잘 납득시키려한다.
카페의 웨이터는 민첩하고 정확하게 몸을 놀리고 손님에게 지나칠 정도로 상냥하다. 그가 층층이 쌓인 잔이나 접시를 아슬아슬하게 나르는 모습을 보면 로봇같기도 하고 곡예사같기도 하다. “그는 서로 맞물리면서 회전하는 기계장치처럼 자기의 동작들을 서로 교묘하게 연결시키려고 애쓴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조차도 기계장치처럼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기가 카페의 웨이터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손님들은 그가 그런 연기를 실현하기를 기대하고, 그는 손님들 앞에서 그 연기자로서만 즉자적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하여 그의 의식 내면에서 보자면 그는 어디까지나 카페의 웨이터라는 연기를 하는 것이지 그 자신이 곧 그런 즉자적 존재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카페 웨이터로서의 연기를 하는 것은 마치 배우가 어떤 인물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그의 주체적 선택이다. 아무리 철저한 연기를 하더라도 그는 인간인 이상 대자적 존재임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결국은 대자적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 예시는 트집잡힐 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증명을 위해서라면, 가령 권위를 부리기 위해서 판에 박힌 근엄한 말투와 제스처를 꾸미는 대학교수의 느글느글한 연기를 본보기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데, 하필 하층민 출신일 카페의 웨이터를 들먹인 것은 사르트르가 부르주아로서의 의식을 밑에 깔고 있으며, ‘존재와 무’가 제시하려는 자유의 논리 자체가 바로 그런 부르주아 인간관의 소산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부르디외의 사르트르 비판은 그런 입장에서 멀지 않다. 그의 말에 의하면, 카페의 웨이터는 사르트르가 생각하듯이 연극배우처럼 자율적인 입장에서 연기를 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제도화된 그의 직책이 부과하는 사회적, 논리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직책이 요구하는 행동규범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이며, 그의 몸짓뿐만 아니라 의복조차도 그의 존재를 응결시키는 직책의 기호이다. 이렇듯 사르트르는 사회경제적으로 조건지워진 구체적 인간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추상적 차원에서 인간의 동질성을 찾으려는 잘못된 논리를 전개한 사람이다.

추상적 인간이해에서 사회경제적 성찰로

부르디외의 비판은 사르트르가 19세기적인 인간관에 머물러 있다는 푸코의 비판과 동궤의 것이고(졸고, ‘주체의 변모-푸코와 사르트르’, ‘문학동네’ 1999년 봄호 참조), 이러한 사르트르로부터의 이탈의 움직임이 비롯된 것은 벌써 1950년대의 일이었다. 그 때가 되면 긴박한 위기가 사라진 유럽은 냉전구도 속에서의 인정이라는 야릇한 상황 속에 정착하고, 이 상황은 인간을 생각하는 각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다급한 당위론으로부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반성적 검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해나가는 자유로운 주체적 企圖, 그 자체가 곧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지배하던 영웅적인 시기로부터, 인간조건에 대한 보다 엄밀한 관찰과 성찰의 시도가 주조를 이루는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이런 발상의 변화는 문학에서는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나타나고, 학문의 분야에서는 이른바 인문학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사르트르와는 전혀 무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자유가 상황 속의 자유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었지만, 특히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논리를 구축해 나감에 따라, 인간을 현실적으로 구속하는 사회경제적인 여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주체의 기도와 맺을 수 있는 관련이 무엇인지를 중요한 성찰의 과제로 삼았다. 카페의 웨이터를 다시 한번 들먹이자면, 사르트르는 이미 그의 행동을 단순히 주체적으로 선택한 연기로 보는 대신에, 그것을 초래한 외적조건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60년에 나온 ‘변증법적 이성비판’에는 한 달에 50불을 받는 여공의 형편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그 여공이 여공으로서의 연기를 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이제 다음과 같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그녀는 부르주아 사회에 의해서 豫期된 존재이다. 그녀의 자리는 자본주의적 과정에 의해서, 국가의 생산적 필요성에 의해서, 공장의 특정한 요구에 의해서 미리 정해져 있다. 나는 그녀가 고용되기 전부터 그녀에게 마련된 삶과 운명을 단정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와 무’에 나오는 카페의 웨이터의 예에만 의거해서 사르트르의 추상적 인간관을 비난한 부르디외의 비판은 일방적이었다는 역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실존주의 통한 맑스주의 부활의 역설

그러나 내 이야기의 초점이 부르디외의 사르트르 비판의 한계를 지적하려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존재론적 자유의 주장으로부터 사회경제적 조건 속의 인간의 인식으로, 그리고 개인적 주체의 주장으로부터 피억압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옮아갔던 사르트르가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려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한데 이 변신의 결과는 한마디로 실패였다. 그것은 동구권의 붕괴로 말미암아, 사르트르를 위시한 수많은 선의의 사람들의 사회주의 지향이 결국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한결 더 중요한 이유는 교조적으로 전락한 맑스주의를 실존주의에 의해서 재생시키려던 사르트르의 기도가 그의 이론 그 자체 때문에 좌절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바로 이 점에 사르트르 생각의 현대성이 있는 듯 여겨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실천적 타성태(practico-inerte)에 관한 것이다. 어폐를 무릅쓰고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간의 사회적 실천’(praxis)의 결과로서 만들어지고, 마치 그 자체의 힘에 의해서인 것처럼 존속하여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생존을 규제하고 그 불가피한 여건이 되는 일체의 것’이다. 예컨대 언어가 그렇다. 언어는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해서 만든 것이지만 일단 만들어진 언어는 문법과 관용에 의해서 그 사용자를 구속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통신호로부터 사회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약정과 관습과 전통과 제도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쓸 수밖에 없는 굴레가 된다.
한데 때로는 그 구속이 가져오는 소외와 反목적성이 극도에 달하고 그것을 강렬하게 의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자본이 더욱더 사회적 힘으로 나타나고 자본가들 자신이 그 봉사자가 되어 가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그 봉사자에게 봉사한다는 이중의 굴욕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이 때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실천적 타성태에 의해서 피동적 존재로 머물렀던 인간이 주체로서의 집단적 실천에 의해서 그 여건을 극복하려고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비록 혁명적 실천이 성공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성공을 다지기 위해서 미구에 자리잡을 제도와 권력구조의 필연적 결과로, 그것은 다시금 실천적 타성태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련의 관료정치와 독재체제는 그 극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어떤 출구가 남아 있는가? 사르트르는 후기의 정치적 과격주의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이성비판’의 비관적 색채를 지양할만한 어떤 이론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인간이 자신의 주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의로운 사회가 인류공통의 이상이긴 하겠지만, 그 실현은 어떤 형식으로든 간에 필연적으로 지배할 실천적 타성태로 말미암아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무시하고 이 세상에 천당을 만들려는 모든 기도는 칼 포퍼의 말마따나 도리어 지옥을 출현시킬 뿐이다.

‘실천적 타성태’속에 처한 인간 상황

아마도 오늘날에는, 서구사회에 의해서 실현되어 있고 한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후발국가가 따르려는 체제, 즉 형식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국제경쟁과 테크놀로지 진화의 혼합체 이외에는 다른 사회를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것이 그나마 인류가 지금까지 도달한 최고의 체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각 개인은 날이 갈수록 더욱 독자적인 인격이 아니라 언제나 대체가능한 기능적 단위가 되어간다. 한데 만일 그 처지를 거부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이 후기산업사회라는 실천적 타성태속에 끼어든 각 개인은 말하자면 그 카페의 웨이터처럼 저마다의 역할이 요구하는 제스처를 시시각각으로 연기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가능하다면 그 제스처의 틈틈이 주체로서의 시간과 공간을 애써 확보해보려는 모순된 삶을 괴롭게 시도해 나갈 수밖에 없다. 자유와 상황, 대자와 즉자, 개인과 집단, 예술과 참여의 대립과 모순을 한 몸에 지닌 사르트르가 아직도 우리에게 뜻있는 존재라면, 그것은 그가 이 환멸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베풀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할 때 근본적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샅샅히 말해주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사상을 논할 경우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사르트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삶의 관련을 생각할 경우에도 역시, 사르트르는 매우 귀중한 성찰의 출발점을 제공해주는 드문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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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연보
1905 6월 21일 파리에서 출생.
1907 아버지 사망, 외가인 슈바이처가에 들어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한 유명한 의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사르트르 어머니의 사촌.
1924 파리 고등사범에 입학, 철학을 전공하며 교수자격시험을 준비. 시몬느 드 보봐르와 만남.
1929 군에 입대, 투르에서 기상병으로 복무.
1931 르 아브르(Le Havre)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
1933 베를린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아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를 연구.
1938 ‘구토’ 출간.
1939 ‘감정 이론 초고’와 단편집 ‘벽’출간.
1940 독일군에 포로로 잡힘. ‘상상적인 것’ 출간.
1942 파리의 콩도르세 고교로 전근. 레지스탕스 운동.
1943 ‘존재와 무’, 희곡 ‘파리떼’ 출간.
1945 고교 교사직을 떠나 생-제르멩-데-프레가의 카페를 전전하며 집필 활동에 전념. 이때부터 실존주의의 대중적 인기 폭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익 정당을 창당하려 했으나 실패. 미국에서의 순회 강연 시작. 연작소설 ‘자유의 길’ 제1권, 2권 출간.
1946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유태인 문제 고찰’, 잡지 ‘현대’ 공동 발기인으로 창간
1948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상황 2’로 출간. 희곡 ‘더러운 손’ 출간. 사후에 출판될 ‘진실과 실존’집필.
1949 ‘자유의 길’ 3권, ‘상황 3’ 출간. 시몬느 드 보봐르, ‘제2의 성’ 출간.
1951 희곡 ‘악마와 선신’ 출간.
1952 카뮈와 논쟁. ‘聖 - 주네, 희극배우 혹은 순교자’ 출간. 메를로-퐁티, 현대지의 공동 편집인 사임.
1954 러시아와 중국 여행.
1955 메를로-퐁티, ‘변증법의 모험’ 출간. 이 책에서 메를로-퐁티는 사르트르의 정치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
1960 ‘변증법적 이성 비판 제1권’ 출간.
1962 ‘스탈린의 유령’ 집필.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출간.
1964 노벨 문학상 거부. ‘말들’ 출간.
1980 4월 15일 파리에서 영면. 향년 75세. 이날 장례식장에는 5만여명의 군중이 모여 사르트르 추도.
1985 ‘변증법적 이성 비판’ 제2권 출간.
1989 ‘진실과 실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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