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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거대한 사회학적 실험실 될 것
중국, 거대한 사회학적 실험실 될 것
  • 김덕영 카셀대
  • 승인 2006.10.12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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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동향_독일 사회학대회(2006. 10. 9~13)
The Dream 1910, Oil on canvas, 6' 8 1/2" x 9' 9 1/2";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지난 10월 9일~13일까지 카셀대에서 독일사회학회 주체로 제33차 사회학대회가 열렸다. 이번 주제는 ‘사회의 자연’(Die Natur der Gesellschaft)이었다. 중국이 초청국가라는 사실이 눈에 띤다.

독일사회학회(DGS)는 1909년에 창립돼 베버, 짐멜, 퇴니스 등의 거장들이 산파역할을 했고, 이듬해 프랑크푸르트에서 1차 대회가 개최됐다. 통상 2년마다 열리며 미리 정해진 주제를 중심으로 발표·토론한다. 발표된 글들은-물론 전부는 아님-추후 책으로 엮어낸다.

이번 주제인 ‘사회의 자연’은 ‘자연’은 사회적 실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회학은 이제 인간의 삶은 사회 그리고 자연에 의해 영향을 받고 결정된다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자연이냐 사회냐의 이분법이 아닌 사회화된 자연과 자연적으로 조건지어진 사회를 인식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자연과학적 관점과 사회과학적 관점 사이의 상호교정과 보완, 자극의 가능성 모색이 이번 대회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사회의 자연’이라는 말은 언뜻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책 제목들을, 그중에서도 ‘사회의 사회’(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를 연상시킨다. 이번 대회 주제 역시 체계이론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사회의 자연’은 적극적으로 자연을 사회의 기능적 하부체계로 편입시킨다. 자연은 사회를 해석하는 모델을 제공한다. 대회 4일째 날에는 전체발표(Plenum)가 네 그룹으로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해석모델로서의 자연? 매스 미디어와 사회에서의 자연과학적 사고구조의 지배에 대하여’라는 소주제는 어떻게 자연이 사회를 해석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가를 예증한다.

이번 대회 주제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뇌연구를 비롯한 생물학과 생명공학기술의 비약적 발전,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 질병(에이즈 같은), 자연재해(허리케인 같은),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 이민과 같은 전구지적 차원의 공간이동, 트랜스젠더, 동성애, 안락사, 폭력, 테러, 전쟁 등은 인간과 그의 본질 및 사회적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탈사회성’, ‘탈사회적’ 세계 또는 시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일반적으로 ‘제3의 생명정책적 전회’(die dritte biopolitische Wende)라 부른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야기된 인간상과 세계상의 혁명적인 변화가 제1의 전회였다면, 생물학적 활력론이 행태연구가 강력한 세력을 떨치던 20세기 초가 제2의 전회였다.

이번 대회는 바로 이런 전회에 대한 과학공동체 차원에서의 성찰을 모색한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자연’을 네 개의 소주제로 나눠 접근하고자 했다: ①생태환경, 자연재해, 인구, 이민 ②복지국가, 가족, 건강 ③몸, 性차이, 공간 ④개별화된 폭력(훌리건 등), 테러, 전쟁.

중국이 초청국가로 선정된 근거는 비교사회학적 관점에 있다. ‘사회의 자연’이란 테두리에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현상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격한 자연적-사회변동을 겪고 있는 중국에선 유럽, 북미 또는 제3세계와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은 장차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문제에 대한 거대한 사회(학)적 실험실이 될 것이다.

이번 대회는 전체(Plenum)발표, 분과발표, 임시그룹(ad-hoc-Gruppen)발표, 정오강연, 저녁집회 등의 총 1백60개 발표장에서 대략 7백 편의 글이 발표됐다. 이를 일일이 다 검토할 순 없고, 얼른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공간의 문제다. 짐멜과 같은 거장이 공간사회학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적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공간은 사회학의 인식지평의 외부에 머물러왔다. 그러다가 요즘엔 사회적 場으로서의 공간뿐 아니라 자연적 공간, 기후대, 대륙과 같은 거대한 지역, 경제공간 그리고 세계사회도 사회학적 인식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우주공간도 국가와 세계사회가 투영되는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공간―몸―性. 사회적 性의 구현으로서의 삼림’ 같은 논문은 주목을 끈다. 더불어 ‘세계사회의 자연’이란 발표문은 사회의 자연이란 관점뿐 아니라 공간사회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시도다. 나아가 사회의 기술적 본질과 측면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사회적 행위의 두 가지 본질(자연). 인간-로봇의 실제적 협력에 대한 네트워크 이론적 고찰’은 기술이 인간과 더불어 사회적 행위, 또는 사회의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임을 암시한다. 더불어 ‘사회적 제도로서의 기술과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기술. 탈사회성 대신에 탈인간적 사회성’은 이론적 함의가 큰 발표문이다.

대회 이틀째인 10일 ‘누가 행위자인가?’라는 주제하에 발표된 다음 글들은 사회학의 자아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매우 도전(발)적인 내용이다: ‘행위자로서의 뇌?’, ‘인공물로서의 의지’, ‘무엇이 행위자로 이해되는가? 막스 베버의 인과성 개념과 신경과학의 도전’, ‘죽음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주체는 언제 끝나는가?’, ‘뇌! 신경과학과 新사회적 사회’.

필자가 보기에 이번 대회는 독립적 분과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이 무엇인가를 모색한 제1차 대회―당시의 주제는 ‘사회학의 길과 목표’였음-와 더불어 가장 새롭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가장 도전적인 학술모임이었다. 이른바 제3의 생명정책적 전회라는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주제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발표된 수백편의 글들은 독일사회학회라는 과학공동체가 새로운 사회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아직은 개념적, 이론적, 방법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인 경험연구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다. 과연 독일사회학자 집단은 ‘사회의 자연’이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루만의 ‘사회의 사회’와 같은 새로운 사회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다각적인 학제간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인간과 그의 본질을 사회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접점에서 사유한 ‘철학적 인간학’과의 공동작업은 필수적이다. 철학적 인간학의 대가인 헬무트 플레스너가 1955~1959년에 독일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사실은 그저 에피소드에 불과할까?!

김덕영 / 독일 카셀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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