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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구름을 가는 뜻
[딸깍발이] 구름을 가는 뜻
  • 교수신문
  • 승인 2000.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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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3 15:47:01
석희태 / 편집기획위원, 경기대

先考께서 耕雲으로 自號한 유래는 이러하다.
1930년대 초 세계에 경제대공황이 몰아치던 때에 선고는 물정 모르고 만석들이 대농토를 담보로 하여 무역에 손을 댔다가 크게 낭패를 보았다. 담보 제공된 땅은 거개가 왜정 식산은행에 넘어가고 실의로 방황하던 끝에 남은 땅의 대부분을 소작에게 무상으로 분배한 뒤 사업에서 떠날 것을 작정·결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선고는 그 착잡 우울한 심경을 털어버릴 양인지, 대지주의 종말을 스스로 공표하기라도 할 양이었는지, 당시로서는 먼 눈으로 보기에도 귀한 경비행기를 전세내어 고향 상공을 날아서는 尙州 북천 제방에 착륙하는 희대의 은퇴식을 가졌다.

이때에 선고는 구름사이를 날면서 인생과 부귀의 허망함이 구름밭을 경작하는 일과도 같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구름이란 천경 만경 갈아도 그 수확할 바 소출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날로 선고는 재물과 수익을 탐하지 않으며, 허무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뜻으로 耕雲處士를 자칭하게 되었음이다.

실로 선고께서는 이후의 생애에 無作爲·무수익·무소유의 생활을 실천하였으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겨 자주 말씀하곤 하였다.
현실에서 그 ‘경운의 도’는 생활의 불편함을 불러 왔고, 그것은 후손에게 있어서 누구에게는 승복할 수 없는 무책임으로, 누구에게는 자랑스러운 미덕으로 평가되었다. 놀라운 것은 어느 쪽에서나 그것이 발전 내지 자기 성취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갖지 않고 있다는 것,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시비를 논함에서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와 타인에게 따뜻함과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더 가지려고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저간에 나라의 기틀을 흔드는 듯한 금융부정사건, 대재벌기업의 파탄, 재벌후계자들의 지분다툼 등의 현상을 목도하면서, 새삼 필부에 불과했던 선고께서 기꺼이 고수했던 미덕을 상기해 보는 바이다. 모두 作爲, 소유, 이런 것에 대한 과욕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先考는 終生期에 후손들을 향해 “내가 남긴 재산이 없으니 너희는 싸울 일이 없어 좋겠다”고 하였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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