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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세평] 美대선의 정치사회학
[신문로세평] 美대선의 정치사회학
  • 이수훈 / 경남대
  • 승인 2000.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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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5 13:17:45
이수훈 / 경남대 사회학

통상 미대선은 축제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예비선거도 그렇고 전당대회의 면모를 보면 잔치집과 진배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잔치가 끝났는데, 그 뒤끝은 문자그대로 만신창이다. 선거후 당선자가 정해지지 않고, 개표를 둘러싸고 잡음이 끝없다. 미국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정확히 둘로 나뉘어 정치적·법적·정서적 대립을 내보이고 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인 미국도 대권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양측 모두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세계 도처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미국내 매스미디어는 제 세상을 만난 듯 선거와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데 열심이다. 만담가들의 풍자와 농담은 더욱 가관이다. ‘백악관에 주인이 없으면 어떠냐. 둘을 같이 보내서 이 일 저 일 보게 만들어라. 마누라는 상원의원이 되었고 지은 죄도 있으니 오갈 데 없이 된 클린턴을 그냥 둬라’. 모두 정곡을 찌르기도 하고 카타르시스적 기능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희화화하고 있는 현실은 결코 코메디가 아님을 알아야 하겠다.

문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도록 가게 된 단초는 무엇일까. 어떻게 2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사회의 선거가 이같은 박빙의 승부를 보였을까. 첫째, 선거에 이렇다 할 이슈가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상층에 대한 과세 문제와 노인층에 대한 의료보장 문제 정도가 이슈였다. 둘째, 그러니 당연히 두 후보간의 차별성이 없어진다. 세 번의 TV 토론에서 차별성이 부각되기를 기대했으나 두드러진 결과가 없었다. 물론 인품이나 자질 시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민주 대 공화 양당 구도가 정착된 미대선에서 당과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인물 싸움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셋째, 그 결과는 매체 홍보전과 여론 공작에서 누가 이기는가의 싸움으로 선거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정치자금과 관련되어 있다. 누가 정치자금을 더 모으고 누가 유능한 선거전략가를 갖고 선거를 치렀는가에 따라 판가름이 나게 되는 것이다. 온갖 커리커쳐와 풍자는 이런 선거전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가 독특하게 나타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 사회가 정확히 둘로 나뉘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투표 결과에 있어 지역적 균열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났음을 개표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와 같은 지역주의는 아니지만 그런 지역적 분리가 확연하게 드러난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밖에도 이분 현상은 성별, 인종별 등등 기타 사회경제적 변수 차원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양분 현상과 균열은 선거 결과의 혼미양상에 따라 더욱 증폭,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모든 사태 전개의 원인은 녹색당 후보 네이더였다고 할 수 있다. 네이더 때문에 고어는 치명타를 입었다. 지금 미국의 현실을 다차원적으로 감안할 때 이번 선거에서 고어는 질 수 없는 후보였다. 그러나 네이더가 우파화된 민주당, 클린턴 밑에서 빛 바랜 고어라고 몰아부치는 바람에 고어는 자신의 지분을 상당 부분 잠식당했다. 문제가 된 플로리다만 하더라도 네이더가 아니였다면 고어가 쉽게 승리할 수 있는 주였다.

비록 기대했던 만큼의 득표를 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네이더는 고어에게 치명타를 가했고, 미국 정치와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생태주의자와 녹색당이 대중정치에 뛰어 들어 선거판을 깨고 강한 이미지를 심었다는 점은 앞으로 미국 정치의 전개에 장기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대선이 우리의 지대한 관심사인 것은 한반도 문제가 미국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근본적인 대한반도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 중론이다. 즉 한반도의 안정과 미국의 지속적인 영향력 유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한반도 정책은 누가 대통령이 되건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정책기조하에 대한반도 개입 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건 집권초기에 내치에 열의를 가져야 하고, 특히 선거결과를 두고 일대 홍역을 치른 뒤에 들어서는 대통령인 만큼 정치사회적 통합에 상당기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내년에는 국제문제에 현실적으로 중대한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이는 한반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워싱턴과 서울간의 공조가 이전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며, 상당한 속도조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부시의 백악관행이 결정되면 행정부와 의회 모두가 공화당이기에 한반도 문제에 전략적 변화가 올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이런 가능성을 열어 놓고, 남한 내부의 역량을 키우면서 통일시대에 걸맞는 사회적 분위기를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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