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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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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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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3:51:10
<1>교육을 망가트리는 것

유현일 /국민대 명예교수·기계자동차공학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된 송자씨가 기업에 길들여진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부당이득을 취하고 오래 전에 출간된 저서의 많은 부분 표절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교육단체와 참여연대로부터 거센 사임압력을 받아 왔다.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관례를 내세우면서 변명했으나 일반국민의 정서로 판단해 볼 때 너무도 부도덕한 행동에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더구나 교육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있는 이 때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송자씨 스스로 용퇴를 결심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돼 국민 사이에 교육에 대한 불만은 자꾸만 쌓여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아 경이적인 경제발전에 우수한 인적자원이 큰 기여를 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동안 계속돼 온 교육의 시행착오가 너무 커 교육전반에 걸쳐 불신이 커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돌아보면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세 가지의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부정의 산물로 나타난 교육현장에서의 촌지는 이 나라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망가트리고 있다. 촌지는 감추어진 떳떳치 못한 돈으로 선생을 비교육자로 만들고, 학부모들로 하여금 돈이면 모든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며,학생이 선생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지키는 선생이라면 촌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촌지를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은 학부모도 학생도 아닌 바로 선생들이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부터라도 촌지를 절대로 받지 말 것이고 받게 되는 경우에는 스스로 아무런 변명 없이 신성한 교육자의 길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대학입시로 말미암아 중학교 교육이 실종되고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이 없는 학원으로 변하고 있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에 중·고등학교 교육이 갈팡질팡 어찌할 바 모르고 헤매고 있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수능시험은 과목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변별력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출제가 되도록 연구돼야 한다. 각 대학에서는 본 고사를 시행해 대학의 교육이념에 충실한 학생을 선발하는데 소신을 가져야 한다. 대학은 선발된 학생에 대해 책임을 갖고 교육을 시켜야 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졸업할 때까지 학업성취에 혼신의 노력을 쏟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 나라의 교육의 성패는 결과적으로대학의 위상에 의해 판단된다고 보며 대학의 위상은 대학에 종사하는 교수에 의해 결정된다. 학부모들의 대학에 대한 무관심과 학생들의 안이한 학업태도를 없애는데 교수의 역할은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따라서 교수채용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채용된 교수에 대한 지원은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하고 교육부도 교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인지 연구해야 한다.

<2>사랑의 매

이호선 / 前 전주대 교수·일어일문학

요즘 유행하는 시사풍자에 퇴직자를 두고 하는 말장난이 풍성하다. “조퇴(조기퇴직)는 불안, 강퇴(강제퇴직)는 원한, 명퇴(명예퇴직)는 체념이고 정퇴(정년퇴직)는 추억”이라는 것도 그중 하나. 그래서 나 또한 수시로 그 추억의 페이지를 넘기며 정퇴의 날 속에 새 삶의 그림을 그려본다.그러니까 교수 10년차 쯤의 해였지 싶다. 오후 늦은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교수님, 잠깐만요.” 학년대표학생 남녀가 강의실 문을 막고 선다. “뭔데, 무슨 일인데?”
학생들과는 정상적인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확신과 자랑으로 강단에 서온 터. 아무일 아니라는 추측은 서면서도 그래도 잠시나마 신경이 날을 세운다.
때가 마침 학원민주화운동으로 한번씩 해일이 일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내 제자들이었다. 잠시를 기다린 뒤 “어서 오십쇼” 도어를 열면서 익살을 부리는 학년대표의 등뒤로 요란한 박수와 함성이 나를 맞는다. 그리고 교탁 위엔 버스데이 케이크 하나. 이어 선물 받쳐들고 꽃다발 안겨주며 다함께 불러주는 생일 축하의 노래.
그 전해 ‘스승의 날’에도 하마터면 낙루할 뻔한 사은잔치의 추억이 있다. 3학년생들의 수학여행을 따라나선 속초에서의 일이었다. 꽃 채워주고 선물 안겨주던 건 오전의 행사. 저녁에 광어회에 반주 곁들여 독상으로 대접하더니 이윽고 막무가내로 등떠밀려 들어간 곳이 호텔의 나이트 클럽이었다.
특별히 세팅된 예약 장소엔 이미 축하 케이크에 촛불이 켜져 있었고 케이크엔 ‘이호선 선생님 감사합니다’의 글귀가 건포도로 새겨져 있었다. 이윽고 내가 자리에 앉자 무대 위의 밴드마스터가 연주를 멈추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추던 춤을 멈추고 손님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마침 이곳엔 멀리 전주대학에서 이호선 교수님이 와 계십니다.” 장내는 조용하다.
“지금 그 분의 제자들이 사은의 샴페인을 터뜨리겠다고 하니, 여러분, 함께 축하해주시지 않겠습니까?”동시에 펑! 하는 샴페인 터지는 소리와 환호박수에 밴드의 팡파레 소리….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오히려 저렇듯 할머니 등에 업고 냇물 건너듯 하는 따뜻한 등허리의 제자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발가락 사이에서 꼬물거리는 피래미의 꼬리놀림이 몰아올리는 간지러움 같은 그런 미소로 꾸며지는 시간들도 그래서 또 많다. 거기에 할아버지의 긴 곰방대에서 풍겨오는 진한 담뱃진 냄새같은 스승의 기침소리가 묻어 사제의 정은 따사롭고 향기롭게 양조되는 것 아니던가.
문제는 ‘사랑의 매’요 때를 놓치지 않는 가르침일 터. 옛말에도 ‘의붓자식 밥으로 키우고 낳은 자식 매로 키운다’고 했거니와 ‘사랑의 매’는 대학생들도 달게 받을 줄 안다고 믿고 싶다.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을 가지고 당당하고 준엄하게 지도하면 저들은 감사로 고개 숙이는 법. 그래서 해마다 졸업생들의 사은잔치에 앉아 정장으로 차려입은 저들의 큰절을 받노라면 어쩜 사랑없는 매질만을 고집했지 않았나 싶은 반성으로 잠시 눈을 감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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