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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소통 보여준 지성사적 사건
학문적 소통 보여준 지성사적 사건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10.01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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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정대현 철학을 토론한다』(김선희 편집, 철학과현실사)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가 평생 일궈온 학문을 두고 소장·중진학자 19명이 논쟁을 걸었다. 정대현의 철학은 심리철학과 언어철학을 중심으로 한 영미분석철학에 위치해 있지만, 동양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장해 오면서 “인문학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19명 학자들은 그러한 논리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정당성을 갖추었는가를 꼼꼼히 검토했다.

엄정식, 이영철, 이주향, 이병덕 교수는 언어철학적 입장에서 ‘맞음’의 철학을 문제 삼았다. 엄정식은 “맞음 개념은 원초적 개념으로 불충분하며, 오히려 진리를 지칭하는 보조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며, 이병덕 역시 “맞음 개념이 다의적이며, 그 어떤 개념도 원자적일 수 없다”라고 비판한다. 이영철은 ‘맞음’ 개념의 원초성을 뒷받침하는 습득가설을 검토했는데 “언어가 없이는 어떤 개념적 사유도 불가능하며, 맞음관계 인식 역시 언어를 필요로 하는데, 맞음 개념의 습득가설은 언어 선행적이다”라고 비판한다. 이들에 대해 정대현은 각각 “‘맞음’ 개념을 일상적 개념과 혼동하지 말” 것과, “모든 개념은 가족 유사성으로 연결돼있을 뿐 다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언어를 “현실의 자연언어에서 보다 확장시켜 봐야할” 것을 주문한다.

심리철학자들의 논쟁도 이어졌다. 정대현의 심성내용의 신체성 논변은 ‘마음의 동일성은 심성내용의 동일성이며, 마음과 마음의 연결은 몸을 통해 이뤄지고, 마음의 사회적 내용은 몸들이 이뤄내는 공동체에 의해 구성돼, 마음이란 사회적 내용을 개인적 몸이 체험하는 장소다’라고 축약할 수 있다.

이러한 논변에 대해 윤보석과 민찬홍은 “애매모호하며 유기적 연결성이나 논리적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윤보석은 “신체성 논변은 물리주의자나 넓은 내용론자가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대현은 “물리주의나 넓은 내용론이 심신이원적 구조의 산물이라면, 나의 심신음양론은 존재론적·의미적 측면에서 유기적 통일관계를 지닌다”라며 반론을 펼친다.

음양론도 논쟁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고인석은 “정대현의 음양론이 형이상학의 경험적 적합성과 개념적 정합성 조건을 만족하는가”를 따졌으며, 김혜숙은 “정대현의 음양모델은 외연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유기적 음양론이라는 사고에 반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비판한다.

이 외에도 ‘필연성’, ‘삶의 문맥적 합리성’ 등의 개념을 따지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정대현 교수는 이들 후학들의 비판에 대해 다시 그들 논리의 허점을 찌르거나 비판을 포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시켜 나가 흥미를 더하는데, 향후 이에 대한 재재반론이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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