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45 (목)
분단은 한국정치의 근원을 규정한 요인
분단은 한국정치의 근원을 규정한 요인
  • 이완범 한중연
  • 승인 2006.10.01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반론: 김영명 교수의 반론에 답한다

이완범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치사

“분단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변동 60여 년간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요한 사건이다. 한국의 국내정치에서 미국 요소가 국내 요소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미국 요소는 우리 정치의 근원적 상황(분단)을 규정했었으며 아직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한에서 이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평자의 비평에 대한 김영명 교수의 반론을 잘 읽었다. 이 책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큰 보람이었다.
필자가 이 책을 아주 ‘한국적’인 저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저 다른 책이나 논문들 보다는 그 점에 좀 더 신경 썼다는 정도라고 평가한 부분에 대해서 평자는 겸손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2005년에 출간한 ‘신한국론’에서 김영명 교수는 단일ㆍ밀집사회라고 한국을 규정하면서 획일성, 집중성, 극단성, 조급성, 역동성을 한국ㆍ한국인의 속성들이라고 평가했다. 매우 신선한 탁견이었다. 또한 그는 ‘한글사회과학’을 제창하는 등 한글운동에 헌신하였다. 2006년에는 ‘우리 정치학 어떻게 하나’라는 책을 간행하여 한국의 정치학을 한국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앞장서왔던 선구자적 중견 학자이다.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논의의 진전을 위해 몇 가지 토를 달아보고자 한다.

평자는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모델을 하나의 검증가능한 경험적 도식, 논리체계로 이해한다. 그런데 저자의 모델은 검증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연역적 시각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모델화라기보다는 정치변동을 이해하는 하나의 시각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시각은 방만하고 복합적으로 전개된 한국의 정치변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할 것이다. 평자가 다른 대안을 모색할 것을 주제넘게 주문한 것은 이를 시각으로 고쳐 부르면 해소되지 않을까 한다. 이 주문도 주제넘을지 몰라도 말이다.

‘보는 눈’을 뜻하는 시각 보다 틀을 뜻하는 모델은 더 엄밀하고 精緻하다는 느낌을 평자는 가진다. 저자가 분석틀을 설정하면서 정치변동의 요인을 분단, 산업화, 힘겨룸으로 정리했는데 이는 매우 독창적이다. 그런데 저자가 잘 염두에 두고 있듯이 원인과 요인은 다르다. 원인은 과학적 경험적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며 사회과학적으로 검증이 잘 될지 평자는 잘 모르겠다. 쿠데타의 발발 원인을 분석한 부분(142~148쪽)에서 그것이 과학적(인과적,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면 발발 요인이나 발발의 배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고 저자가 평가하는 5·16에서의 미국 역할보다 사회정치적 요인과 군부 내적 요인이 보다 중요하더라도 여전히 복합적인 요인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평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원인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여러 요인들 중의 하나라고 규정한다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것도 배경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수입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회·정치적 상황과 민간집단보다 먼저 발전한 군부의 내적 조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147쪽)고 했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을 구조적인 상황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쿠데타의 배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민주주의를 수입하고 군부가 발전된 모든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적 상황 속에서 군의 성장 및 파벌 갈등을 통해 청년 모반 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들에게는 통치의식이 무르익었다. 쿠데타라는 구체적인 행동 동기는 당시 일어났던 군 정화운동의 실패와 사회혼란이 작용했다고 적고 있다(147쪽).

그렇다면 김종필의 8기생들을 중심으로 한 정군운동파의 등장과 정군의 실패, 사회혼란이 동기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군운동파의 등장은 물론 직접적 요인이다. 또한 사회혼란은 보다 더 구조적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구조적 원인으로 묶어서 검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8기생 그룹은 독자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하지 못하고 박정희 등을 끌어들였다. 구조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역할도 중요한 성공요인들의 하나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물론 평자도 리더십보다 구조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강조한 요인들이 ‘보다 더 중요하고 구조적인 요인들’일뿐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미국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많은 정치적 영향을 한국에 미쳤지만, 분단과 대한민국 수립을 빼고는 한국의 ‘모든’ 정치 변동에서 국내 요소가 미국 요소보다 더 컸다”고 반론했다. 평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또한 “한국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은 일을 미국 정부가 강요하여 이루었거나 한국의 국내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미국 요소가 역전시킨 정치 변동은 하나도 없었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미국 요소가 컸었던 분단과 단독정부 수립이 두개의 예외이며 다른 것을 ‘모든 정치변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예외가 너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자의 분단·산업화·힘겨룸의 정치변동 요인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단이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변동 60여 년간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자는 평가하고 싶다. 미·소가 강요한 분단이 한국정치의 성격 모두를 규정하지는 못했으며 남에서는 자주국방이 북에서는 주체사상이 논의되고 있으므로 이제 이를 상당히 탈피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분단체제 아래 살고 있다. 남의 경우는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 때문에 현재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격화된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의 국내정치에서 미국 요소가 국내 요소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미국 요소는 우리 정치의 근원적 상황(분단)을 규정했었으며 아직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한에서 이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정치는 미국과 소련이 그 장기판을 마련하였으며 아직 그 판을 깨지는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남한 정치의 한계를 미리 그어놓은 미국의 역할은 매우 컸으며 지금까지도 그 영향아래서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고 미국이 유일하고 정당한 권력자였던 해방직후의 상황은 점차 변화했으며 지금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국내 정치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김영명 교수가 결코 미국의 역할을 무시하지는 않으며 평자 또한 국내적 요인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평자는 보다 기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이며 김영명 교수는 변화된 한국의 현실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