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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두번째 퀴어영화제 - 침실에서 아카데미로
[예술계풍경] 두번째 퀴어영화제 - 침실에서 아카데미로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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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1:47:40

퀴어(queer)라는 단어는 ‘이상하다’는 의미와 함께 ‘동성애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퀴어영화라고 하면 흔히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가리킨다. 이번으로 2회를 맞은 ‘서울퀴어영화제’(9월 1일-10일)의 짧은 역사는 우리 사회 性의식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97년에는 심의기구와의 마찰로 영화제 자체가 무산됐고, 98년에는 전문가에게만 상영해야 한다는 제제가 가해졌던 반면에, 이번 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기금 수혜대상으로 선정됐다.

퀴어영화제 집행위원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동성애라는 소수문화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상황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회 전체의 문화적 창조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비주류 문화가 활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는 주류 문화가 비주류 문화를 억압하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했고, 소수자의 문화적 취향은 공개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를 기획한 서동진 프로그래머 겸 조직위원장(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동성애를 침실로 몰아넣고 이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동성애의 정치적 인식론적 잠재력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는 성적 취향일 뿐 아니라 정치적 입장이자 철학적 태도라는 것이다.

호모포비아, 박해의 역사

이성애주의의 産室인 헐리우드 영화에서 동성애자는, 잘못된 대상을 사랑하며 만성적인 성욕항진에 시달리는 변태로 재현된다. 퀴어영화는 그러한 왜곡된 재현에 맞서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을 정상적으로 재현하는 한편, 그러한 왜곡을 조장한 이성애주의의 맹점을 드러낸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동성간의 관계를 아름답게 재현하는 영화나 이성애중심주의를 풍자하는 영화에서부터, 이성애에 기초한 이항대립적 가치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적,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출품된다.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욕망 이론이나 정체성 이론은 동성애 담론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런 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욕망이나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따라서, 사회가 주체에게 일정한 정체성을 강요하는 메카니즘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제도의 역기능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러한 제도하에서 맞지 않는 정체성을 강요당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해방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동성애 담론은 인간의 정체성을 ‘여자’와 ‘남자’로 규정하고 이성애를 본질적인 인간 관계로 설정하는 사회의 압력에 대항하며, 근대 이후 사회에 만연하게 된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을 비판한다.

동성애에 대한 억압의 역사는 19세기말부터 시작된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취급했다. 나치는 피의 순수성을 부르짖으며 유태인과 함께 동성애자들을 학살했다. 많은 서구 국가는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일탈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형사 처벌을 가했고, 1980년대의 신보수주의는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원흉으로 몰아붙였다. 이와 함께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운동도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19세기말 독일 사민당 당원이던 히르시펠트는 최초의 동성애 운동의 지배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동성애 해방 운동은 1969년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항쟁으로 가시화됐다고 할 수 있다. 1967년 영국에서 동성애 금지법이 폐지됐고, 1971년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는 동성애가 정신병이 아님을 공표했으며, 최근 네델란드나 프랑스에서는 입양제도의 정착과 함께 동성애 가족구성이 합법화됐다.

이와 함께 동성애 담론은 게이/레스비언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학계 안에 정착되는 추세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1975)의 출판과 함께 섹슈얼리티가 학문적 담론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급진적 페미니즘의 분리주의 전략과 함께 레즈비어니즘이 정치적, 이론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퀴어 이론은 많은 학술대회의 주제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학의 교과과정에 포함됐으며, 실제로 다수의 대학교수가 동성애자를 자처한다.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에 속하는 동성애자들의 생애를 요약하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소크라테스, 사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아르뛰르 랭보, 폴 베를렌,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마가렛 미드, 루스 베네딕트, 앙드레 지드, 앤디 워홀, 존 케이지,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푸코가 포함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性的 타자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애 담론이 포스트모더니즘 일반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합리주의적인 총체성 아래 매몰됐던 타자성을 부활시킨 포스트모더니즘에 힘입어 동성애 담론은 성적 소수자를 가시화하고 그 잠재력을 확인했지만, 90년대 동성애자는 일종의 트렌드로 상품화되고 있다. 게이 영화가 시장성을 고려하면서 활력이 사그러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그런 비판은 아직 시기상조다. 가시화되지조차 않은 상태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의 현실은 동성애자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문화적 상상력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퀴어영화제가 문화계에서 제도적으로 승인된 것과 동성애 담론이 학계에서 논의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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