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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반역자일까?…한국어 집착 벗어나야 세계화
번역가는 반역자일까?…한국어 집착 벗어나야 세계화
  • 이형진
  • 승인 2023.09.15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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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K 문학의 탄생: 한국문학을 K문학으로 만든 번역 이야기』 조의연·이상빈·이형진 외 11인 지음 | 김영사 | 416쪽

미학적 감동 만드는 한국문학 영어번역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실상 극복해야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MLA)에서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일본 출신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1920년대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출신의 베이브 루스 이후로 110년 만에 가장 위대한 메이저리그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투수와 타자 각각의 포지션에서 메이저리그 MVP라는 새로운 전설로 등극하고 있는 오타니 선수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뛰어난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작가의 역량도 존경의 대상이지만, 한국문학 작품의 맥락과 깊이를 파악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번역 독자들에게 독립된 문학작품으로서 미학적 감동까지 만들어내는 한국문학 영어번역가의 뛰어난 언어적, 문학적 역량도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한국문학의 영어번역가는 문학번역만으로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힘들어하거나, 영어번역서 표지에 번역가의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열악한 번역가 위상을 경험하게 된다. 더욱이, 번역의 완성도나 영어권 독자들의 수용 과정보다는 주로 원문의 오역이나 변형, 생략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한국문학 영어번역에 대한 국내 연구 방식은 결국 영어번역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과 의심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번역텍스트가 원문에 대한 충실성 관점에서 의심과 검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배경에는 ‘번역가는 반역자’(‘Traduttore, Traditore’)라는 오래된 이탈리아어 표현에 담긴 원문 훼손과 배신의 차원뿐만 아니라, 번역가의 기원이 전쟁 포로 출신이라는 그리스·로마의 역사적 맥락과도 연결된다. 고대 로마에 의해 정복되어 노예로 끌려온 타국의 지식인들이 점차 로마제국의 라틴어를 배워서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학문적 가교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라틴어와 자신의 모국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노예 지식인들은 자칫 언제든지 로마를 배신하고 자신들의 모국 편에 설 수 있다는 의심을 받으며 경계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적 배경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 영어번역의 주체는 결국 이들 번역가라는 불변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한국문학 작품이나 작가는 사실상 한국 밖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번역의 존재가치는 절대적이다.

최근 들어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배경에는 한국문학을 영어로 훌륭하게 옮긴 이들 번역가의 숨은 노고가 담겨 있지만, 정작 번역을 만들어내는 영어번역가들의 목소리를 책으로 만나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9명의 한국문학 대표 영어번역가들과 5명의 한국문학 영어번역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K문학의 탄생』은 숨은 영웅과 같은 번역가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 응원의 마음을 담은 헌정본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문학은 근본적으로 한국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국문학의 본질적인 정체성과 위상은 한국문학의 영어번역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학의 영어번역에 대한 과도한 학술적 관심과 한국어 원본에 대한 기득권적인 집착은 자칫 한국문학을 세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K-Pop의 한국어 가사가 과연 다른 나라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되는지, 누가 번역하는지, 얼마나 한국어 가사에 충실한지를 우리가 굳이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해외 팬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K-Pop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수용하고, 공유하면서 K-Pop을 청소년기 성장 문화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만들어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문학의 영어번역도 비록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영어권 번역가가 주도적으로 번역하고, 영어권 독자들이 수용의 주체가 되어 비록 한국 독자들의 방식과는 다를지언정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면서 한국문학 영어번역이 그들의 삶에서 의미있는 소통과 성장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의 세계화에도 좀 더 가까워지고, 자칫 ‘K-문학’이라는 용어에 수반되는 가벼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K문학의 탄생』은 한국문학을 해외 독자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K-문학’으로 만들고 싶은 번역가들과 전문가들의 진심과 간절함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의 영어번역은 본질적으로 한국 독자들을 위한 배려의 제스츄어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형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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