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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3)시인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3)시인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9.23 1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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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문인 과대 평가 … 황병승·김경주 주목

젊은 시인들은 공교롭게도 애증의 사제지간으로 얽힌 고은과 서정주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평가했다. 한편, 주목하는 동료시인으로는 황병승과 김경주를 많이 꼽았다.

2000년 이후 등단한 시인을 중심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존하는 작가 중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으로는 4명중 1명이 고은을 꼽았다. 이는 설문조사 문항 자체가 보기 없이 주관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젊은 작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여겨진다.

고은 다음으로 이문열, 김영하, 신경숙 등 기존 문단에서 문학성과 상업성을 겸비했다고 인정받던 소설가들이 각각 2명으로부터 “과대평가 됐다”고 거론됐다. 작고한 문인으로는 “작품성보다는 권력 편에 선 삶의 과오가 컸다”는 이유로 5명이 서정주를 지목했다. 전세대를 매료시킨 서정주의 미학적 魔力은 통하지 않았다. 이 외에 기형도와 윤동주(3명), 김소월·한용운(2명) 순으로 나타났다. 교과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들이 젊은 시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제대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되고 있었다. 

70~80년대 민중시단을 선도했고,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고은을 과대평가 됐다고 평가한 주된 이유는 “목청과 활동반경에 비해 그다지 개성적이거나 뚜렷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 작품보다 ‘주변인’들의 주관적 평이 고은의 ‘이미지’를 굳혔다는 얘기며, 나아가 “근작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혹평도 더러 있었다. 시인 서정주는 “작품성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민족에 대한 과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과대평가된 문인에 올랐다. 이처럼 신인들은 ‘민족’을 중요시 여겼다.

결국 고은과 서정주는 사회적 활동이 작품을 압도한 경우로 해석된다. 기형도에 대해서는 “요절시집에 붙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해설이 크게 작용”했고 이후 “요절의 상징이 됐다”, “작품의 폭이 넓지 않고, 암울하며 서술적이다”는 평가가 주어졌다. 한 응답자는 시인 진이정이 기형도 못지 않게 뛰어나지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유약한 센티멘털리즘에 도취된 청춘”, “혁명가와  저항시”라는 수식어가 과장됐다는 평가다. 외국 작가로는 “태작이 많고, 상업추수주의”인 점을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4명)와 무라카미 류(2명)를 꼽았다. 

작품활동을 하는 데 있어 영향을 받았거나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는 백석(10명), 김수영(8명), 이성복·李箱(6명), 보르헤스(5명), 김혜순(4명), 보들레르(4명) 등을 꼽았다.


지난해 ‘시인세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대시 1백년 최고의 시집으로 백석의 ‘사슴’이 꼽히기도 했는데, 한 젊은 시인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단단한 갈매나무”라는 싯구로 백석의 시세계를 묘사했다. 고향과 추억, 언어의 순도, 유랑자의 시선으로 백석의 시는 많은 젊은 시인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는 도회적 시가 유행하는 현대 시단에서 젊은 시인들이 향토적 서정을 갈망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는 “현실에 직면하는 詩作”, “치열함에서 오는 새로움”, “첨예한 의식으로 구성된 산문”이란 평가가 뒤따랐으며, 시인 이상에 대해서는 “치열한 부정과 혁신정신”, “실험정신과 문제의식”이란 수식어와 함께 “청소년기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문학정신을 배우고 싶다”며 거론됐다.

현존하는 시인 가운데 젊은 시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 이성복에 대해서는 “문학에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치밀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수성과 실험정신, 전통의 조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현실에 대한 비유의 다양성과 시간초월성이 탁월한 작가”라는 추천사를 받은 보르헤스는 이 세대만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시인 김혜순에 대해서는 “초기작에 비해 최근의 시가 더 좋은 시인” , “최승자와 더불어 늙지 않는 시세계” 등 의 이유가 조심스레 들어졌다. “천상의 노래를 지상으로 끌어내린 시인”, “현대성, 현실에 가장 탄력적 반응을 보인 시인”으로는 보들레르가 꼽혔다. 이밖에도 신경림, 김지하, 박상륭, 오규원 등에 각 2명씩 답했다. 하지만 이성복과 더불어 80년대 시단을 양분했던 황지우 시인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새롭게 조명해야할 작고문인으로는 손창섭, 김종삼, 백석, 리처드 브라우티건 등을 각각 3명씩 거론했으며, 현존 작가로는 “노동과 삶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 김신용과 “도시적 감수성에서 자연, 사물의 존재성으로 돌아간 변화에 대해 주목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규원이, “자기철학을 운동으로 밀고 나가는 신념에 동감한다”는 이유로 김지하가 나란히 2명씩 추천됐다.

낯선 이름인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깨끗한 스타일,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이란 이유로  몇몇 젊은 시인으로부터 주목받았다.올 7월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중앙)를 펴내 문단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인 김경주는 동료시인들로부터 “서정과 실험이 적절히 어울어진다”, “철학적 사유가 독특하다”, “땅에 발 딛고 쓰는 시인이 없는 세상에서 대비되는 시인이다”라는 평을 얻었다. 이밖에도 김행숙, 이준규, 김애란, 진은영, 김언이 2명으로부터 추천됐다.

한편 ‘‘근대문학의 종언’에 동의하는 가’라는 질문에 젊은 시인들 21명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12명은 동의 내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기타의견 2명은 문학은 ‘종언’이기보다는 ‘항상 시작’으로 여긴다는 마음가짐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국문학의 위기론’을 묻는 질문에는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침체화”를 들었으나, “사적 생활로 흐르는 문학적 테마”, ”해외 유명작가들 베끼기에 급급한 상상력 부족”, “매너리즘 답습” 등도 문학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문화 약진으로 인한 문학의 위상 변화”, “변화에 인색한 문단”, “편가르기와 특정작가와 평론가의 상호인정으로 인한 권위 독점”, “저질 작품 과잉생산” 등의 의견도 잇달았다. 하지만 “위기론은 일상적 수사일 뿐, 한국문학은 독자와 너무 많은 소통을 원하는 건 아닌가”, “자본주의 구도에서 자리변화일 뿐 생산담론 형성이 더 중요하다”는 등의 희망적 견해도 있었다.

젊은 시인들의 주요 창작 모티프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및 ‘독서’가 가장 많았다. 독서는 대부분 문학 외에 철학서와 예술, 영화관련서들을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모티프”라고 말한 시인도 있었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설문에 참여해 주신 분들: 강성은, 곽은영, 길상호, 김경인, 김경주, 김근, 김민정, 김성대, 김승해, 김일영, 김지혜, 문신, 박연준, 박지웅, 박판식, 박후기, 송승환, 송진권, 안시아, 안주철, 오은, 윤석정, 윤진화, 이근화, 이병률, 이성원, 이영주, 이용한, 장이지, 채은, 최금진, 최하연, 하재연, 한승태, 황성희. (이상 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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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쾨르 2006-09-28 01:23:40
냉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