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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념 시대의 진보신화-신영복
탈이념 시대의 진보신화-신영복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9.23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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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 ‘진보’라기보다는 ‘어른’ … 감옥의 한계도 읽혀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우리시대의 ‘어른’이다. 그 ‘어른’은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사형수로 20년간 감옥 생활을 하셨다. 한홍구 교수의 말에 의하면 별 것 아닌 일로, 혹은 죄에 비해 “너무 비싼 징역을 산” 그는 감옥에서 ‘분노’보다는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강준만)는 ‘진보주의의 새로운 지평’(김호기)을 열었다.

그렇다면 신영복 교수의 진보는 어떤 진보인가.  ㅅ대  ㅇ 교수는 “진보의 스펙트럼은 다양한데 신영복 교수의 진보 개념은 일정하게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진보다”라며 “이를테면, ‘나무야 나무야’ 라는 책에서 국가에 대해 말하면서 ‘민족적 역량들을 학문 내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좋은 의미로 말했고 그런 생각들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이제 좌파 지식인들이 단호하게 국제주의적 입장을 취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ㅇ 교수는 “그러나 진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레닌주의의 영향으로 굉장히 전투적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남을 배려하는 좌파, 따뜻함과 사랑을 주는 좌파의 이미지를 준다는 점에서, 신영복 교수의 ‘따뜻한 진보’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ㅈ대 ㅇ 교수는 “신영복 교수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신 교수의 저작 내용이 현재 KTX 여승무원 문제, 한미 FTA에 대한 ‘진보’ 입장과 크게 입장을 달리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이나 답안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누가 신 교수의 저작을 읽고 래디컬함으로 인한 위협을 느끼겠냐”라고 답했다.

ㅈ대 ㅈ 교수도 “신영복 교수는 ‘진보적 상징’이라기보다는 ‘어른’이다”라며 “그가 학계나 대중에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각박하고 경쟁 위주인 현실에서 한 숨 돌리면서 사색할 수 있는 사색의 인도자, 지혜로운 어른 정도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렇기에 그의 저작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다”라는 것.

ㅅ대 ㅈ 교수는 “사실 신영복 교수의 학문적 연구성과라는 것은 사회과학적 맥락에서 보면 전혀 없지만 이는 신 교수가 살았던 시대,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우리 ‘지식인의 초상’이기 때문에 그런 시대를 살아낸 ‘어른’에 대한 경외감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학문이 아니라 학문 외적인 ‘감옥’이라는 신산한 환경에서 비참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숭고한 의미, 혹은 보편적 의미를 끌어냈다는 점, 또 아름다운 글씨를 통해 사람들에게 작용한다는 점 등에서 ‘신 교수의 방법’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ㅈ 교수는 그가 “실제 ‘그러한 것’보다 신비화되는 측면은 있고 이는 경계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ㅇ대 ㄴ 교수는 “신 교수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던 그 때의 이미지로 박제화되어 ,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인물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신비화된다면 그 부분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래의 신영복 교수의 글이 보인다
소주 ‘처음처럼’에 새겨진 신영복 교수의 글씨와 시, 책 판매에 곁들여진 ‘사은품’으로 제공되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 계속되는 관련 에세이의 출판 ,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에 대해서 ‘지식인의 상품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여러 교수들은 “지식인이라고 별달리 고귀한 것이 아닌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며 예민한 반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ㅇ대 ㄴ교수는 “신영복 교수에 대한 대중의 호응 자체를 나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그런 호응의 이면에 출판사의 상업주의 전략, ‘우상 숭배’ 등 다양한 맥락이 숨어있다면 단순히 그에 대한 호응 외에 그 맥락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신영복 교수의 한계는 무엇일까. ㅅ대 ㅅ 교수는 “신영복 교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을 하며 이에 대해서는 맑스주의적 논리가 지배적인 반면, 또 한편으로는 생태주의나 노장사상에 공감하고 있고 또 맑스주의 이전의 공동체주의적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기도 한데, 이런 각각의 이론들이 잘 어울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는 점이 한계라면 한계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신 교수의 이론을 실제 사회 대안으로서 적용하려면, 그래서 낮은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주장이자 사상들이다”라고 말했다. 신영복 교수의 한계, 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계는 “감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즉 “현실은 감옥 속의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상황과 평균적 이해와 속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복잡한 사회인데 , 선생님께서 감옥이라는 현실과 동질성이 떨어지는 곳에 오래 머물렀다는 점, 또 학교라는, 사회와는 다른 세계에 오래 있어서 현실적 대안과 구체적 답을 원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답을 줄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로 인한 아쉬움은 신영복 교수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신영복 교수의 이벤트형 정년 퇴임식’에 관해 주간지에 글을 쓴 한 교사는 “나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씩 추상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선생님의 ‘관계론’이 소통되는 방식은 좀 ‘존재론’적으로 느껴졌다고, 그래서 선생님의 사상이 ‘고통의 바깥자리’에서 교양의 한 자락으로 변모돼가는 것을 느꼈다고, 세상의 악한들에게도 열려 있는 선생님의 너른 품이 속 좁은 내게는 문득 안타깝기도 했다고, 나는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라고 적잖은 씁쓸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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