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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4)평론가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4)평론가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6.09.22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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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재능'을 먹다"…김종삼 "재조명해야"

30대 젊은 문학평론가들은 현존 문인 가운데 소설가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작고한 문인 중에서는 시인 李箱과 서정주를 과대 평가된 문인으로 꼽았다.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는 소설가 전성태와 시인 황병승을 추천한 평론가들이 많았다.

이번 교수신문이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문학평론가는 모두 30명이 참가했다. 30대를 중심으로 40대 초반까지 평단에서는 젊은 편에 속하는 평론가들이다.

문학평론가 30명 가운데 7명은 국내, 국외에서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각각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정치적 발언의 의미 파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의 결여 △초기의 탁월한 미적 재능이 단조롭고 틀에 박힌 정치적 의식으로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한 점 △정신과 지향의 불구성 △봉건성 등 주로 보수 우파의 입장을 대변했던 정치적 행보에 따른 ‘과대평가’ 요인이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상품으로서의 문학, 세계시장과 문학의 관계에서 그가 미친 영향에 대한 성찰 필요, 일시적 유행 모드라는 지적이었다. 20살 초반의 감수성에 기댈 뿐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이문열에 이어 고은(3명), 문태준(2명), 신경숙(2명), 공지영(2명)도 과대평가 문인으로 꼽혔으며, 답변이 적었던 외국에서는 하루키 외에 귄터 그라스(2명)도 비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었다.

작고한 시인 李箱과 서정주는 각각 5명이 ‘과대평가’ 됐다고 말했다. 李箱은 그의 시세계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았고, 작품에 대한 신비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정주는 친일 행각과 전두환 정권 찬양 등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영합하는 태도와 문학권력에 의해 그의 작품들이 교과서를 비롯 대중들에게 많이 소개되는 바람에 다른 뛰어난 시인들의 작품이 사장되거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새롭게 조명해야 할 문인으로 소설가 박태순이 유일하게 중복(2명) 답변이 나왔고, 공선옥, 김애란, 배수아, 임헌영, 장정일 등 23명이 거명됐다. 작고한 문인 가운데서는 김사량, 김종삼, 김소진이 각각 2명씩 의견이 모였다. 이태준 등 월북 작가 재평가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사량은 식민지적 삶의 극단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문학적 성과에 비해 전집조차 발간되지 못한 상황이 한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평론가들이 최근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 꼽힌 소설가 전성태(3명)는 종전의 리얼리즘과는 달리 그의 소설은 환상을 품고, 공간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크게 봤다. 여전한 문제의식을 다른 각도로 볼 여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 모순의 진중한 고민도 한몫을 했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이유로 들었다.

시인 황병승(3명)도 주목하고 있었는데 시의 새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시의 정치성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한 평론가는 “시는 황병승 전후로 나뉜다”라고 극찬했다.

생물학적 성을 넘어선 여성적인 비평, 폭넓은 교양과 작품을 보는 깊은 눈과 유려한 문체 등을 이유로 신진 평론가 신형철(2명)도 주목을 받았다.

문학평론가들이 시인, 소설가와 달리 가장 두드러진 의식을 드러낸 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데 대한 동의 여부 였다. 소설가는 동의한다는 입장이 앞섰고, 시인은 두 배 정도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나 평론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21명)이 ‘동의한다’는 답변(4명)보다 압도적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제기의 진정성엔 동의할 수 있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굴절돼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가타라니식 의제 설정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한국문학 위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엔 낯익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협소·침체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으나 기타 의견도 많았다. “위기를 늘 품고 있어야 모색도 치열해 질 수 있다는 문인들의 자기 암시도 한몫을 한다”, “문학만 위기일까”를 들기도 했다. 또, 문학의 권력화와 아카데미화(대학중심의 문학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 “절대적인 독서 인구는 결코 줄지 않았다. 한국문학은 지식독자층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 작가들은 대학교수(평론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쓰고, 평론가는 그 장단을 맞추고, 그들이 쓴 평론(논문)은 오직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만 읽힐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선배 문인으로 황석영(4명)이 가장 많이꼽혔다. 다음으로 유종호, 오정희가 3명씩, 김우창, 백낙청, 조세희, 최인훈도 2명씩 응답했다. 외국의 문인 중에서는 밀란 쿤데라(4명), 가라타니 고진(2명), 귄터 그라스(2명), 마르께스(2명)가 ‘영향’을 많이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작고한 문인중에서는 ‘비평도 문학작품임을 일깨워 준’ 김현이 6명으로부터 헌사를 받았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
고인환, 권오현, 김나정, 김대산, 김동윤, 김미정, 김양선, 김영찬, 김정남, 김종욱, 김형중, 류신, 복도훈, 안미영, 엄경희, 오윤호, 오창은, 이경수, 이선영, 이성혁, 이수형, 이재영, 이현식, 이희환, 장일구, 정재림, 조강석, 허병식, 허윤진. 이상 30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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