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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자기만의 방’과 사이버공간 속의 단자
[학이사] ‘자기만의 방’과 사이버공간 속의 단자
  • 정문영 계명대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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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55:15

정문영 / 계명대 교수·영문학

언제부터인가 한가롭고도 낭만적인 여름 분위기의 효과음이던 매미소리가 밀린 숙제는 다 했느냐고 다그쳐 묻는 연속음처럼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기로 된 가을학기가 왔나보다. 부산해진 캠퍼스에 이는 바람이 왠지 예사롭지 않은 것 같고 불안하다. 매번 겪는 단순한 학기초 증후로만 진단하기엔 좀 심각한 것 같다. 그래도 운이 좋아 차지하게 된 울프가 갈망하던 ‘자기만의 방’에서 애써 유포리아를 느끼며 개학 첫날의 전열을 가다듬어 본다. 이러한 불안증세를 자각한다는 자체가 교수로서의 자격 미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의식이 초조감을 몰고 온다. 서둘러 고정된 시선을 돌리다, 증세의 단서 추적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자기만의 방’에 갇힌 아카데미 이데올로기의 수인의 모습을 거울에서 본다.

대학 사회와 교육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모두들 바쁘다. 외부 공간의 위협을 피해 각각 ‘자기만의 방’에 수도자처럼 홀로 있는 단자가 돼 버린다. 답답해진 단자는 컴퓨터의 윈도우를 열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로 들어가 정보 대해의 유목민이 돼본다. 하지만 자유의 대해가 아니라 ‘무한한 감옥’에 또 다시 갇혀 있다는 숨막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출구를 찾는다. 프루프록이 돼 바다로 떠났던 단자는 자의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익사 직전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정말 개학 첫날 ‘오후의 몇몇 파편조각들’이라도 건지려면, 온 힘을 다해 정신을 집중해야겠다.

라캉의 ‘대학의 담론’이 여전히 담론들의 상호주관적 균형을 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그 담론 속에 내재된 교수의 권위는 어떤 것이고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캠퍼스 잔디 위에 또 다시 밀려온 황금물결의 낭만과 느림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는 멋진 교수는 될 수 없을까. 하지만 좋았던 그 시절의 추억 속에 사는 감상적인 약자, 곧 도태될 부적응자로 분류되지는 않을까. 괜히 홈페이지를 열어 놓고는 부가노동에 시달리면서‘아카데홀릭(acadeholic)’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정시키려는 눈들’의 위협이 몰고 오는 무기력을 다시 돌아온 잔인한 9월이 불러일으키는 욕망과 기억으로 떨쳐버리며, 이번 학기에 새롭게 준비한 수업 내용들을 점검해본다.

교육의 콘텐츠가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로 빼곡이 채워진 강당에는 아직도 실용적인 ‘사실’만을 가르치라고 외치는 19세기 공리주의자 그래드그라인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디킨즈의 비쳐 같은 인포매니아 인간이 모범생으로 지목된다. 정보 자체를 의미로 착각하는 하이퍼미디어의 함정에 빠진 인포매니아 모범생 대신 시시처럼 자신의 체험의 콘텍스트 속에서 정보를 의미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박한 학생들이 기를 펴는 수업을 고대해본다.

‘나는 본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가 생겨날 정도로, 영상시대의 원동력은 인간의 보고싶어하는 욕망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보지 않는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했듯이, 이제 현대인은 자신을 깊이 없는 표면 현상으로만 경험하고 있다. 평면화된 현대인은 공간을 콘텍스트가 아닌 평면 텍스트로, 시간을 붕괴돼버린 영원한 현재로 여기며, 모든 것을 맥락에서 벗어나 의미없이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로만 인식할 뿐, 사실 보는 것이 아니다. 교과목의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효과 탓에 몰려든 연극과 영화 수강생들에게 시·공간 속에서 본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수업의 시나리오를 짜본다.

이 학기도 불안하고 갈등하는 단자처럼 ‘자기만의 방’과 사이버스페이스의 안팎을 오가며, 변화하고 있는 환경에 순응과 저항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매학기 잔인한 계절과 함께 돌아오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풋풋한 학생들의 생기를 기억하게 하는 가르침에 대한 욕망과 초심이 모든 걸림돌을 넘어 시종여일하기를 고대하며, 개학 첫날 오후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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