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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탈근대사회의 문화 -<2>인공신체의 인간학
[테마기획] 탈근대사회의 문화 -<2>인공신체의 인간학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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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27:33

유전체(genome)의 정보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수익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난치병 치료, 노화 저지, 인공장기 개발 등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도 하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유전체 정보의 관리 권한 및 상품화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전통적인 인본주의 정서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배아복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킨다는 주장이 아무리 격렬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과학발전과 그 응용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본성(nature)과의 투쟁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유교적 고정관념은 물론, 인간을 유기적 개체로 파악하는 서구의 전통적 존재론 역시 흔들린 지 오래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근대의 인간관이 더 이상 유효한 사고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정보는 ‘사회의 호르몬’이며, 전기는 대뇌를 포함한 신경망이다. 정보사회에서 인간이란 다양한 메시지가 통과하는 특정한 소통회로의 결절점이라는 것. 포스트모던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이란 생물학적, 화학적, 전자공학적 질료의 조합이다. 실제로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의 두뇌가 일종의 컴퓨터라는 가정에 의존한다. 개성을 선택하여 다운로드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영혼은 종교인의 것일 뿐이다.

인간은 하이데거 식의 존재론으로 규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들뢰즈 식의 욕망하는 기계로 변형됐다. 신체가 물리적 형태변화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사고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변했다. 말하자면, 기차를 갈기 없는 말로 이해하던 시대에서 말을 털 난 기차로 이해하는 시대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유기체적 인간관에 따르면, 이런 변화는 부정적인 것이다. 테크놀러지가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수탈, 능멸, 훼손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변화는 인간을 자연적 한계로부터 해방시켰고 인간의 가능성을 향상시켰다. 테크놀러지와 함께 인류는 소외된 노동과 싸웠고, 고통과 싸웠고,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하고 감내해왔던 것들(질병, 상해, 노화, 수명 등등)과 싸웠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겨냈다.

성형수술은 인간의 변성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뼈에 실리콘을 삽입함으로써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현실은 당연하면서도 놀랍다. 아직은 인공장기의 삽입이 불가피한 생존방책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인공신체가 일상적인 상품으로 통용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게 관련회사들의 기대다. 성정체성을 바꾸는 성전환수술 역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최근 피어싱, 문신, 염색에 관심이 급증하는 현상 역시 육체에 대한 통제력, 그리고 정체성의 변화가능성을 향한 대중적 비전을 투사한다.

프로제익(prosaic)은 감정의 화학작용에 개입하는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제로 활용되는 약물이다. ‘멀쩡한 대학생들’이 엑스터시(extasy)라는 약물에 몰두하는 현상은 감정의 화학적 변용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엑스터시 지지자들은 FDA가 불행한 사람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약물은 인정하지만, 정상인을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약물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올림픽의 도핑테스트 역시 어떤 면에서는 보통 사람을 슈퍼맨으로 만드는 약물을 금지하는 방책이다. 개인의 약물사용에 대한 사회적 제제가 합리화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 증명과 동시에 약물사용의 사회적 동인 규명 및 대안 제시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합법적인 흥분제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대중문화의 판타지는 새로운 인간존재를 인공신체로 재현한다. 수많은 Sci-Fi는 인공신체를 가진 존재를 인간의 타자로 설정하며, 새로운 존재태에 대한 두려움을 노출한다. 영화이론의 단골 메뉴이자 블록버스터인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replicant), ‘터미네이터’의 싸이보그(cyborg), ‘엑스맨’의 돌연변이(mutant)는 모두 인간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선 인공적 존재로서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위협하는 동재로 등장한다.

한편, 페미니스트 사상가 해러웨이(D. Haraway)는 싸이보그 개념을 저항담론으로 전유하기도 한다. 싸이보그는 싸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 따라서, 싸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며, 현실인 동시에 허구다. 해러웨이의 단언에 따르면, 싸이보그는 우리에게 정치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론이다.

존재의 연속성을 위하여

19세기의 존재에게 정치성을 부여했던 존재론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체로서의 인간이었다. 이를 통해 존재는 수많은 형태의 억압에 대항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천부인권적 인간관의 긍정적 파급력보다 경직된 이데올로기라면, 우리는 싸이보그라는 ‘깨어진 정체성’(fractured identity)을 우리 존재론의 근거로 삼을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식의 존재 변형을 존재의 진화로 이해하는 시각이 위험한 것처럼, 존재의 타락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생산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해당 국면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인식틀이 무엇이냐는 것이고, 그러한 인식틀이 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자연 오염을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틀로 설정하는 생태학 역시 존재의 연속성을 근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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