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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로지르기] <2>올림픽
[문화가로지르기] <2>올림픽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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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39:03

변혁의 열기로 뜨겁던 68년. 멕시코시티는 올림픽 개막 10일 전에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자 260명을 사살했다. 88년, 서울은 올림픽 주최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상계동 주민들을 졸지에 ‘난민’으로 만들었다. 인프라가 열악한 채무국들이 올림픽을 흑자로 만들기는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올림픽을 여는 것은 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채권국 역시 ‘남는’ 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이번에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가 경기장 입장권을 프리미엄을 붙여 팔려다 들통난 사건이나 2년 후 열릴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조직위가 IOC위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건 등은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올림픽의 정체를 보여준다. 지난번 애틀랜타 올림픽의 짜증스러움도 기억난다. 100회 올림픽을 도대체 왜 미국에서, 그것도 불과 12년전에 올림픽을 개최했던 미국에서 열어야 하느냐는 무수한 비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미국의 패권주의, 그리고 경기 중계의 1/4을 광고로 때운 방송사의 가공할 상혼이 어울려 사상최대의 이윤을 뽑아냈었다.

중계료만 놓고 봐도 올림픽은 스포츠 디스플레이의 정점이다. 시드니의 중계료는 애틀랜타 때보다도 40% 증가한 13억 달러. 그리고 여기서는 선수들의 황홀한 육체 뿐 아니라 운집한 군중이 엄청난 규모로 전시된다. TV로 중계된 최초의 올림픽은 36년의 베를린 올림픽. 이때 리펜슈탈(L.Riefenstahl)은 8만5천석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을 스펙타클화하는 테크닉을 선보였다. 그녀는 나치 전당대회 다큐멘터리 ‘승리의 의지’를 감독하며 히틀러의 그 유명한 뉘른베르크 연설을 숭고하게 영화화한 바 있다.

파시즘의 비판자 벤야민(W. Benjamin)에 따르면, 올림픽은 노동효율의 극대화를 지향했던 테일러주의의 일환이다. 테일러주의란, 일종의 능률지상주의로서, 초시계를 사용하여 노동자의 육체적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노동력에 기계적 기준을 부과한다. 초시계와 싸운다는 점에서는 기록갱신에 매진하는 선수나 컨베이어벨트 위의 노동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 고로, “올림픽은 반동적”이다.

올림픽 장사는 무엇보다 민족주의적 정서에 의존한다. 근대 올림픽은 최다 ‘우승국’ 미국을 필두로 국가별 메달집계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메달을 딸 때마다 민족주의 의례를 진행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들로 구성된 공정하고 평화로운 지구, 이것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관객의 꿈이다. 대목을 노리는 언론이 올림픽의 신화를 손상시키는 사건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올림픽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테러, 방화, 협박들이 알려진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68년 멕시코시티를 우리는 100m 9.9초의 경이가 실현된 풍성한 신기록의 올림픽으로 기억한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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