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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루터와 印刷機, 그리고 印터넷
[학이사] 루터와 印刷機, 그리고 印터넷
  • 김승철 경성대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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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0:08:18
김승철 / 경성대·신학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속해있었던 마틴 루터에 의해서 촉발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 성문에다가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95개조 논제’를 써 붙임으로써 자신이 몸담고 있던 카톨릭 교회와 멀어지는 길을 가게 됐다.

루터가 반대하고 나섰던 이 免罪符는 다름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다량으로 인쇄되고 판매될 수 있었다. 인쇄기가 성서를 인쇄해 냈음은 물론이지만 당시 교회가 판매하고 있었던 면죄부 역시 찍어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물적 요인 가운데 인쇄기가 첫 번째로 꼽힌다는 점이다. 당시 변방에 불과하던 비텐베르크의 대학에서 가르치던 루터의 말과 사상이 유럽 사람들 전체에게 전달돼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인쇄기의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루터의 책을 펴내려고 안달이었다. 인쇄기는 언제나 루터를 위해 준비돼 있었으며, 그 인쇄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가히 ‘실시간적으로’ -종이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루터의 말과 생각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종교개혁이야말로 인쇄기의 덕을 가장 최초로, 그리고 가장 크게 입은 결과라고 하니, 종교개혁은 과연 인쇄기의 작품이라고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동일한 인쇄기가 면죄부를 찍어냄과 동시에 그 면죄부를 반대하는 책도 널리 퍼트렸다고 하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으나, 그 아이러니는 교회를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루터가 세상을 떠난 지 5백년이 되어가는 오늘날, 루터는 아직 무덤에 머물러 있지만 루터를 루터로 만들어 주었던 인쇄기는 이제 ‘印터넷’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치로 변용·부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印터넷과 함께 그간 무덤에 머물러 있던 루터도 다시 부활할 것이며, 그로 인해서 또 한번의 종교개혁도 이루어질 것인가? 그런데 만일 루터가 부활한다면 그는 이제는 인쇄기가 아니라 印터넷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가 두드린 인터넷 화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화면은 놀라웁게도 5백년 전 인쇄기가 갈라놓았던 카톨릭과 개신교(루터교)가 아름다운 화해를 이루어낸 장면을 보여줄 것이다. 인간은 오직 신의 은혜만으로 구원받는다고 갈파한 루터는 카톨릭이 인간의 自力救援을 가르친다고 비판하였지만, 같은 신앙의 뿌리에서 나온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모두 ‘신의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에서 일치를 보여줌으로써 印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루터는 저돌적인 타입의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지나치게 앞세운 나머지 때로는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의 가장 위대한 인문주의자이자 화해론자이며 루터조차도 한 때 ‘유럽의 정신적 향도’라고까지 칭송하던 에라스무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던 일이나, 교리적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끝내 동료들과 등을 돌렸던 사실들을 보면 루터의 성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印터넷과 함께 부활한 루터는 ‘루터가 나를 악마의 화신이라고 해도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그래도 나는 루터를 끝까지 신의 使者로서 존경하겠습니다’라고 했던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적 신앙과 관용, 그리고 지혜에서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인쇄기의 후예 루터는, 확신은 관용과 깊이는 넓이와 상치되는 것이 아님을 印터넷 화면을 통해서 알게 되지 않을까? 끝없는 만남과 만남의 그물 망으로 이루어진 印터넷이 불러일으킬 새로운 종교성이란 넓고 넓은 관계의 바다에 삼라만상이 여실하게 비치는[海印三昧]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印터넷 시대를 살아갈 루터는 ‘마음이 그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생각을 일으키는’[應無所住而生其心](金剛經) 종교성이라는 기치를 들고서 모든 분리와 대립을 화해시키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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