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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조광조』(아카넷 刊),펴낸 정두희 서강대 교수
[저자인터뷰]『조광조』(아카넷 刊),펴낸 정두희 서강대 교수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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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09:55:41

정두희 교수의 ‘조광조’는 조광조라는 문제적 인물을 중심으로 중종 당시의 역사를 재구성한 독특한 역사서다. 글쓰기에 흥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집필해온 방대한 분량의 작업을 ‘백업 파일도 안 남기고’ 다 지워버렸다는 정 교수. 그가 일률적인 학계풍토에서 벗어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조광조’와 대면한 결실이 이 책이다.

꼼꼼한 고증을 통한 인물중심 역사서술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조광조가 활동하던 4년의 기간이 전후의 맥락과 함께 꼼꼼한 고증을 거쳐 극화됨으로써 묵직한 소설적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 실제로 정 교수는 우리나라 사학계가 역사서술에서 문학성을 좀더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와 문학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이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치는 않다고 말하는 그는, 스튜어트 휴즈의 일화를 소개하며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흥미롭게 조명한다. 휴즈는 월터 스콧의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며 영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는데, 정작 연구를 시작하니 스콧의 작품들이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완전한 허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러나 휴즈는 영국사를 연구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언제나 스콧의 일독을 권한다는 얘기다. 역사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연구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기 때문일 터. 이러한 그에게 역사와 역사 아닌 것, 학문과 학문 아닌 것의 관계는 그렇게 분명치 않아 보인다. 나아가, 그는 그 사이의 경계지대로 내려온다는 것이 ‘위험하지만 필요한 작업’이라고 판단한다. “쉽지는 않겠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결국은 사학도 다른 영역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이렇듯 정 교수가 어렵사리 마주한 조광조라는 인물은, 현실정치에서 유교의 이념을 실현하려했던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광조의 유교 이념은 ‘사적인 일상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살아있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결국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숙청을 당함으로써 현실정치에서 패배한다. 개인의 이상은 현실에서 좌절되게 마련이라는 것. 그러나 정 교수에게 패배와 좌절은 비관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공자의 이념이 주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해서 유교의 가치가 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개인적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되는대로 살면 되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 그의 반문이다.

그러나 정 교수가 유교를 오늘날 최고의 가치틀로 설정하고 있다고 추측한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최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유교재발결론’이나 ‘유교자본주의’ ‘유교민주주의’ 등의 유교 담론에 냉담하다. 오히려 그는 현실의 문제를 유교적 가치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한다. 논어나 맹자를 즐겨 읽고 감동하는 그이지만,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가 오늘의 현실을 해석할 때 야기될 수 있는 폭력성(이를테면, 상하관계의 영속화)에는 누구보다 민감한 것이다.

“유교적 가치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광조의 열정적 이념에 감동하는 정 교수에게 묻고 싶다. 오늘날 ‘자기정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념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 시대일까? 이런 시대에 전통사회 연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 교수는 자기반성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85년에 처음으로 T.G.V를 타 봤어요. 어찌나 빠른지 창밖에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가 없더군요. 나의 위치가 정확치 않을 때 관찰이 부정확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타고 있는 세상이라는 열차의 속도가 옛날보다 빨라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현실과 내가 탐구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좀더 예민하고 치열하게 생각해야겠지요. 전통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욕구는 항상 변하니까요.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그런 사색을 우리 역사학자들이 해야겠지요.”그는 ‘조광조’의 후속편으로 ‘유자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조광조가 전형적으로 권력의 주류에 속했다면 유자광은 서자 출신의 야심가”였다고 평가하는 그는, 유자광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조선 왕조의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아웃사이더가 조선시대 주류 이념과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줄 그의 ‘유자광’도 기대해 본다.

학자로서 정두희 교수는 ‘관학’이 된 성리학의 폐해를 보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학문을 비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지식인이다.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이라는 정 교수의 연구방법론은 그가 현실과 만나는 길, 바로 그것이다.

<김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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