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8:50 (목)
[책들의 풍경] 니체 서거 1백주년과 한국철학계의 두 표정
[책들의 풍경] 니체 서거 1백주년과 한국철학계의 두 표정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8.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8-14 09:49:49

‘철학’으로 구경적 삶을 탐구해나가는 학인들, 특히 초인을 폐부 깊숙이 노래한 니체 주변에서 사는 연구자들이 대단한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 오는 2003년까지 ‘니체전집’을, 니체 자필원고를 그대로 살려 연도순으로 정리, 출판한 발터 데 그루이터사의 ‘니체비평전집’(KGW·전23권) 번역본으로 완간할 계획이 그것이다. 이미 지난 8월에 제13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동호 옮김, 니체편집위원회 감수, 책세상)와 그의 사상적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제22권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월)’(백승영 옮김 니체편집위원회 감수, 책세상)가 일차로 선보인 바 있으므로, 이 번역 계획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니체해석의 세 코드 : 하이데거·들뢰즈·후기구조주의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이들은 무엇보다 니체 원전의 훼손과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니체 철학의 개념상 오류를 바로잡는데 애썼다는 점이다. 일어판 중역이나 비전문가 번역이라는 오명을 벗기는데 주력한 인상이 역력하다. 잘된 모국어 번역본을 갖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옮긴이/감수라는 독특한 방식을 선택했다. 특히 감수를 맡은 ‘니체편집위원회’는 1998년 겨울에 중·소장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근 3년 간 니체의 철학적 개념과 번역상의 오류를 잡고 통일안을 마련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한국어판 니체전집을 준비했다. 정동호(충북대), 이진우(계명대), 김정현(원광대), 백승영(서울대 철학연구소) 교수등이 편집위원으로 뛰고 있다.

니체 서거 1백주년인 올해, 니체라면 내로라하는 국내 연구자들이 제출한 성과물은 일단 ‘공동연구’물 형태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기왕에 나온 니체 관련 저작이 있지만,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김상환 외, 민음사)과 ‘니체 이해의 새로운 지평’(성진기 외, 철학과 현실사)은 이 분야 중·소장 학자들의 화음을 보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광인’ 니체의 철학사적 평가 과정은 몇가지 코드를 지니고 있다.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 전체를 극복하려는 야심만만한 사상가로 니체를 자리매김한 인물은 하이데거였고, 그는 니체를 가리켜 엄밀하고 체계적인 철학자로 명명했다. 두번째로, 니체 철학의 핵심을 변증법적 사유를 극복한 차이의 철학으로 평가한 것은 훗날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들뢰즈였다. 세 번째로 푸코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접근이다. 이것이 미국으로 전이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을 자극했다. 니체에 대한 관심은 미국발 포스트모더니즘과 분리될 수 없다.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의 니체 평가와 해석은 이러한 기조 위에 놓여 있다. 김상환(서울대), 김진석(인하대), 박찬국(서울대), 백승영, 서동욱(벨기에 루뱅대 박사과정), 신승환(가톨릭대), 윤평중(한신대), 이창재(시카고대 포스트닥), 장은주(서울대 강사)가 필자들. 제3부 니체와 더불어 철학하기에 담긴 3편의 논문이 ‘한국적 탈근대를 기다리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힐 뿐, 전체 구성은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벤야민이 물었던가. 기념비는 어떻게 세워지는가라고. 그렇다면, ‘니체 100년’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뒤집어보는 것은 불가능할까. 제대로 된 ‘니체전집’을 갖지 못한 이땅의 학계가 어떻게 ‘뒤집어보기’를 시도할 수 있겠는가. 이점에서 ‘니체 이해의 새로운 지평’ 저자들의 목소리에는 자기반성과 각오의 결기가 촘촘하다. “오늘의 우리는 유치한 니체 숭배자가 되거나 니체를 부당하게 매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니체는 자기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의 귀를 때려 부셔야 한다고 외친다. 그렇다면 니체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눈과 귀도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니체를 다시 읽는 일’이 그것이다. 이때 ‘다시 읽는다’는 것은 맥락과 급소를 치면서, 제것으로 만든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정작 ‘새롭게 읽기’에 걸맞는 접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구성상으로 본다면 앞의 책과 닮아있지만, 우르스 마르티, 라인하르트 마르크라이터, 페터 퓌츠, 뤼스 이리가라이, 진고웅, 야마자키 요스케 등 외국 학자들의 글을 함께 묶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게함으로써 칸트, 헤겔, 포이어바하, 맑스 등 근대철학자들과 대비되는 니체의 특성을 읽고자 했으며, 나아가 니체의 비판이론과 정신분석학 지형을 더듬고, 현대철학적 과제를 제기하고, 동양철학과의 연계성을 탐색했다. 강영계(건국대), 김양현(전남대), 김정현, 문성학(경북대), 이진우, 이창재, 정동호 교수 등 니체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김달용·노승희(전남대 영어교육과), 김형국(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문석우(조선대 러시아어학과) 교수 등 비전공 학자들까지 참여했다.

니체의 재창조, 우리의 말과 사유로 철학하는 길

니체를 ‘마르지 않는 사유의 샘’에 많이들 비유한다. 그만큼 현재적인 사상가라는 뜻이다. 박영문고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니체가 아카데미밖의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면, 사후 1백년이 지난 지금, 이땅에서 니체는 어떤 이름으로 되살아날 것인가. 니체가 호명되는 이유? ‘사후 몇주년’이라는 세레모니가 불러낸 ‘유령’이어서? 두가지만 지적하자. 비록 ‘니체’에 한정되긴하지만, 의욕적인 ‘니체전집’ 번역이 무르익어간다는 것, 이로써 우리 학계의 지적 성숙을 잴 수 있을테고, 다음 ‘우리에게 니체는 누구인가’라는 이들 연구자의 물음이 한시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그 단초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수확이라면 수확이 분명하다. “니체와 함께 근대를 벗어나든, 또는 니체를 넘어서 우리의 삶과 세계, 역사와 철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사유의 틀을 형성하든, 그 모두는 이 자리에 선 우리의 철학적 몫일 것이다. 그것은 백여년 동안의 서구 철학의 수용사를 넘어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사유로 철학하는 길이기도 하다.”(신승환) 이 대목,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사유로 철학하는 길’의 모색과 실천이야말로 니체 서거 1백주년을 맞는 한국 철학계의 진지한 자기반성이자 내면의 광경일 것이다.
<최익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